정재환의 우리말 비타민

전문용어의 띄어쓰기 2

봄뫼 2020. 5. 30. 12:15

  일단 기뻐해 주십시오. 삼삼칠박수를 치셔도 좋고 춤을 한 번 추셔도 좋습니다. 드디어 띄어쓰기 마지막 규정에 도달했습니다. 정말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서 셔셔셔 하면서 왔다는 느낌 아닌 느낌이 팍 듭니다. 띄어쓰기 마지막 규정 제50항입니다.

 

50

전문 용어는 단어별로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하되, 붙여 쓸 수 있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

만성골수성백혈병

중거리 탄도 유도탄

중거리탄도유도탄

(을 원칙으로 하고, 허용.)

 

전문 용어란 학술 용어나 기술 용어와 같이 전문적인 영역에서 쓰이는 용어이고, 전문 용어는 둘 이상의 단어로 이루어졌더라도 하나의 개념을 나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붙여 쓰면 됩니다. 한 가지 고려할 것은 전문 용어가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의미 파악을 쉽게 하기 위해 띄어 쓰는 것은 원칙으로 하지만, 더러는 붙여 쓸 수도 있다는 겁니다.

 

원칙

허용

무역 수지

무역수지

음운 변화

음운변화

상대성 이론

상대성이론

국제 음성 기호

국제음성기호

긴급 재정 처분

긴급재정처분

무한 책임 사원

무한책임사원

배당 준비 적립금

배당준비적립금

후천 면역 결핍증

후천면역결핍증

지구 중심설

지구중심설

탄소 동화 작용

탄소동화작용

해양성 기후

해양성기후

무릎 대어 돌리기

무릎대어돌리기

 

위와 같은 전문용어는 국어사전을 참고하는 게 좋습니다만, 모든 전문용어가 다 올라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국어사전에 오른 전문용어와 유사한 전문용어는 같은 방식으로 띄어쓰기를 하면 됩니다. 전문 용어를 확인하려면 국어사전을 참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무릎 구부려 서기는 국어사전에는 실려 있지 않지만, 국어사전에 실려 있는 무릎 대어 돌리기와 유사한 체육의 동작이므로 무릎구부려서기와 같이 붙여 쓸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왜 어떤 말은 사전에 올라 있고, 어떤 말은 올라있지 않는 거지?’하는 자연스러운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만, 비슷한 모든 말들을 다 올릴 수 없는 사정도 이해할 필요가 있겠지요. 다 올리는 것이 최선이라면 비슷한 형태의 말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을 올려 기준으로 삼는 것이 차선일 겁니다.

 

한편 전문 용어 가운데는 둘 이상의 단어로 이루어진 경우라도 띄어 쓸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한자로 된 고전 책명은 띄어 쓰지 않는다. 이들은 합성어로서 하나의 단어로 굳어진 것이거나, ()라고 하더라도 띄어 쓰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양의 고전 또는 현대 책명이나 작품명은 구와 문장 형식인 경우 단어별로 띄어 쓴다.

 

분류두공부시언해, 동국신속삼강행실도,

번역소학(한문 고전 책명)

베니스의 상인(서양의 고전 작품명)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현대의 책명)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서양의 현대 작품명)

 

   이는 중국어는 띄어쓰기가 없고, 영어는 띄어쓰기가 있다는 중국어와 영어의 구조 차이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고, 오랫동안 관습적으로 써온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다음 내용은 49항에서 설명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관형사형이 체언을 꾸며 주는 구조, 두 개 이상의 체언이 조사로 연결되는 구조의 전문 용어도 붙여 쓸 수 있다.

 

따뜻한 구름 / 따뜻한구름

강조의 허위 / 강조의허위

 

   다시 한 번 기뻐해 주십시오. 삼삼칠박수도 좋고 춤을 춰도 좋습니다. 드디어 한글맞춤법 띄어쓰기 41항에서 50항에 이르는 규정과 설명의 마지막 내용입니다.

 

한편 두 개 이상의 전문 용어가 접속 조사로 이어지는 경우는 전문 용어 단위로 붙여 쓸 수 있다.

 

자음 동화와 모음 동화 / 자음동화모음동화

 

   그동안 띄어쓰기 설명에도 여러 문법 용어가 등장했습니다. 의존 명사, 단위 명사, 고유 명사, 보조 용언, 합성 용언 등등. 띄어쓰기 설명문에서 이들 단어는 모두 띄어 쓰고 있습니다만, 위 마지막 설명에 따르면 문법 용어도 전문 용어이므로 모두 붙여 쓸 수 있네요.

 

의존 명사 / 의존명사

합성 용언 / 합성용언

문법 용어 / 문법용어

 

  한글맞춤법 띄어쓰기 규정을 살펴봤습니다. 코로나 덕분일까요? 여하간 생애 처음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물론 이렇게 한 번 봤다고 해서 모든 게 이해되고 기억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1,000쪽에 이르는 영문법 책도 한 번에 이해하고 기억할 수 없습니다. 인류가 글을 써온 오랜 역사만큼이나 많은 방법과 규칙이 만들어졌습니다. 띄어쓰기도 그중 하나인데요, 원칙도 있지만 예외도 있고, 방식과 내용이 풍부하기도 복잡하기도 합니다. 너무 풍부하고 복잡한 탓에 골이 꽝꽝 울려서 모른 척하고 싶은 마음도 생깁니다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관심을 갖는 만큼 생각하는 만큼 연습하는 만큼 노력하는 만큼 보이는 거겠지요. 띄어쓰기는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고통일 수 있지만, 글을 읽는 사람의 편안함과 편리를 배려하는 마음이 담긴 따뜻한 규칙입니다.

 

202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