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와 외래어 남용이 도를 넘었습니다. 대부분은 영어입니다. 다시 말해 부스러기영어 남용입니다. 외래어 사용이 불가피한 경우도 많습니다. 컴퓨터, 하드디스크 같은 명사류 낱말이 그렇습니다. 네티즌은 ‘누리꾼’이라는 우리말로 대체하기도 했습니다만, 누리꾼을 쓰는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명사류는 물론 패션이나 아이티 분야에서 쓰는 전문용어도 외국어를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민이 깊어지는 대목입니다.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진하다'라고 하면 될 것을 '나이브하다'라고 할 필요는 없으니, 우리말 사랑을 다시금 강조하고 싶습니다. 최근 문제가 되는 것은 부적절한 공공언어입니다.
최근 부산시가 야심차게 발표한 사업입니다.
사업명은 '라이트 업'.
빈집을 개조해 마을작업장이나 카페, 도서관을 만들겠다는 건데, 선뜻 이해되지 않는 단어들이 눈에 띕니다.
DIY, 메이커스페이스, 케어센터, 안심쉘터.
도대체 어떤 곳을 의미하는 걸까.
- [공공언어 기획]① “안심쉘터가 뭐죠?”…무너지는 공공언어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505931
‘안심쉘터’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주부나 아이들을 위한 안전한 공간을 의미하고, ‘케어센터’는 나이 드신 분들을 돌보는 곳입니다. DIY는 영어 do it yourself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소비자가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한 상품을 뜻합니다. 이미 오랜 전부터 거리에 DIY라 적은 간판이 널려 있어 좀 익숙합니다. 그래도 무슨 말인지를 한국인 모두가 안다고는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메이커스페이스는 뭘까요? 해당 기사에 설명이 없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부산시의 이런 언어 사용에 대해 사회복지시설 유숙 소장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뭘 케어를 하겠다는 건지, 우리의 좋은 단어 '돌봄'이라는 단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비슷한 듯한 서비스가 예쁘게 포장이 돼서 마치 다른 서비스인 것처럼 비치는 것은 공공에서도 그렇고 민간에서도 좀 반성을 하고...
한국어답지 않은 한국어 표현이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것도 걱정입니다만, 무슨 말인지 모르니, 소통이 안 되고, 시에서 무슨 일은 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시의 이런 정책 덕분에 도움을 받거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이들이 소외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일반인들이 일상에서 남용하는 부스러기영어에 대해서도 성찰이 필요합니다만, 지자체의 부스러기영어 남발은 정말 심각합니다. 왜 그렇게 부스러기영어를 좋아하는지, 그래야 직성이 풀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한 가지 제안이 있습니다.
문화부의 ‘새말모임’을 비롯해서 한글운동을 하는 많은 이들이 알쏭달쏭한 부스러기영어를 대신할 수 있는 우리말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게 잘 보급이 되지 않는 것이지요. ‘그린푸드’를 ‘건강음식’이라고 하자고 해도 그린푸드 대신 건강음식을 쓰는 경우가 매우 드뭅니다. 이렇게 바로 즉각적으로 대체하는 것이 어렵다면 차선책이지만 살짝 돌아가는 것도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말 용어가 널리 퍼질 때까지 우리말을 앞에 쓰고 해당 용어를 괄호 안에 넣자는 겁니다. 다음은 새말모임에서 제안한 대안용어를 활용해 작성한 예문입니다.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한국에서는 패닉바잉(panic buying)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한국에서는 공황 구매(패닉바잉 panic buying)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불법 촬영을 막기 위해 공중화장실에 안심 스크린(安心 screen)을 설치했습니다.
→ 불법 촬영을 막기 위해 공중화장실에 안심가림판(안심 스크린 安心 screen)을 설치했습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고, 미닝아웃(meaning out)을 지향하는 고객들에게 그린테일(greentail)을 통한 마케팅(marketing)이 대세입니다.
→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고, 소신소비(미닝아웃 meaning out)를 지향하는 고객들에게 친환경 유통(그린테일 greentail)을 통한 홍보(마케팅 marketing)가 대세입니다.
대안용어가 익숙해질 때까지 위와 같이 쓰다가, 대안용어가 정착이 되면 괄호를 지워도 될 것입니다. 공고문, 안내문, 신문 기사 등을 작성하는 공직자들이나 기자들이 다소 번거로움과 불편을 느낄 수 있겠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부스러기영어 남용과 우리말 중심의 언어생활을 지키고 키워나가야겠습니다.
2020년 8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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