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때, 띄어쓰기에 신경을 쓰면 쓸수록 띄어쓰기가 어렵게 느껴집니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는 띄어쓰기고 뭐고 뜻만 통하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냥 무시할까 하는 충동에 사로잡힐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는 없어서 다시 한 번 들여다봅니다.
“기억이 날 듯 말 듯 가물거린다.” “김밥 말듯 돌돌 말아라.” 두 개의 문장 속 ‘듯’을 보면 하나는 앞말과 띄어져 있고 하나는 붙어 있다. 같은 단어인데 어떤 때는 띄우고 어떤 때는 붙이니 띄어쓰기가 어렵게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 [똑똑 우리말] ‘듯’의 띄어쓰기/오명숙 어문부장
같은 '듯'인데 붙여 쓰기도 하고 띄어 쓰기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듯'이 어미인 경우에는 붙여 쓰고, 의존명사인 경우에는 띄어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미든 의존명사든 '듯'은 '듯이'의 준말이기도 한데요, 먼저 의존명사 듯은 대개 어미 ‘-은’, ‘-는’, ‘-을’ 뒤에 쓰입니다.
아기는 아버지를 빼다 박은 듯 닮았다. → 아기는 아버지를 빼다 박은 듯이 닮았다.
꼬마는 잘 모르겠다는 듯 눈만 껌벅이고 있었다.
돌탑이 무너질 듯 말 듯 위태로워 보인다.
안타깝게도 수돗물은 나올 듯 나올 듯 하면서도 나오지 않았다.
- 표준국어대사전
위 예문에서 ‘잘 모르겠다는 듯 눈만’을 ‘잘 모르겠다는 듯이 눈만’이라고 해도 부드럽습니다만, ‘수돗물은 나올 듯 나올 듯 하면서도’를 ‘수돗물은 나올 듯이 나올 듯이 하면서도’라고 하면 뒤에 오는 ‘하면서도’ 때문에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이렇게 문장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을 때, ‘이’를 생략하는 것이 부드럽습니다. 다음은 어미 '듯'인데요, 어미이므로 당연히 어간에 붙여 씁니다.
땀이 비 오듯 하다.
그는 물 쓰듯 돈을 쓴다. → 그는 물 쓰듯이 돈을 쓴다.
내가 전에도 말했듯 저 앤 정말 공을 잘 차. 내가 전에도 말했듯이 저 앤 정말 공을 잘 차.
- 표준국어대사전
위 예문에서 ‘비 오듯’은 ‘듯’이 어미여서 어간 ‘오’에 붙여 쓴 것입니다. ‘오+듯’의 구조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오’와 ‘듯’을 띄어 ‘비 오 듯 하다’라고 띄어 쓰면 이상합니다.
그리고 ‘땀이 비 오듯 하다’를 ‘땀이 비 오듯이 하다’라고 해도 어색합니다. 뒤에 오는 ‘하다’하고 부드럽게 연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줄여 쓴 것이지요. 반면에 ‘물 쓰듯 돈을 쓴다’는 ‘물 쓰듯이 돈을 쓴다’고 해도 자연스럽습니다.
자동차가 지나가듯(지나가듯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 어미
먼지가 뿌연 것 보면 방금 자동차가 지나간 듯하다. - 의존명사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여기서 ‘보듯’은 ‘보듯이’의 준말이고, ‘듯이’는 어미여서 어간에 붙여 쓴 것입니다. 속담의 의미는 서로 관심이 없다는 건데요, 부디 ‘듯’과 ‘듯이’의 띄어쓰기를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하지 마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20년 8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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