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이 희망

한글날 발견된 홍범도 장군 한글 묘비

봄뫼 2024. 10. 11. 16:15

  109일 오후 83, 578돌 한글날이 저물어가는 시각, 누리소통망서비스에 눈을 번쩍 뜨게 하는 한 장의 사진이 올라왔다. ‘저명한조선빨찌산대장 홍범도 묘묵직한 철판에 양각으로 새긴 한글이 눈을 찌르듯 선명하다.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의 영웅 홍범도는 '빨찌산 대장'이었다. 러시아어 파르티잔(partizan)은 노동자나 농민들로 조직된 비정규군을 일컫는다. 정규군이 아닌 의병 또는 민병대를 가리킨다. 규범 표기는 빨치산이지만, 당시 고려인들은 빨찌산이라 적었다. 조선빨찌산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제와 싸운 의병이자 독립군이다.

  지난해 국방부는 홍범도 흉상 철거라는 사달을 일으켰다. 홍 장군이 공산당 활동을 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1927년 홍 장군은 볼셰비키에 입당했다. 그러나 공산당은 1945년 전과 후가 다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는 연합군의 일원이었고, 독일, 일본 등과 전쟁을 했다. 조선빨찌산은 독립 전쟁을 위해 일제와 싸우는 모든 나라와 연대했다. 그래서 홍 장군의 묘비에 새겨진 빨찌산대장은 자랑스러운 독립 영웅을 기리는 호칭에 다름 아니다.

  일제 침략 이후 만주와 연해주로 이주한 한인들은 곳곳에 한인촌을 건설하고, 민족교육을 통해 2세들을 가르치며 독립 전쟁을 준비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간된 해조신문은 한글로 인쇄했고, 신흥무관학교 생도들은 새 나라 세울 이 뉘뇨, 우리 우리 배달나라의 우리 우리 청년들이라, 두 팔 들고 고함쳐서 노래하여라, 자유의 깃발이 떴다.’라는 한글 가사로 된 교가를 부르며 심신을 단련했다.

  19431025일 홍 장군은 75세를 일기로 카자흐스탄에서 서거했고, 집 근처에 묘지를 만들었다가 종전 후 크질오르다시에 있는 중앙공동묘지로 옮겼는데, 무덤이 무너져 내리는 사고가 발생했고, 이를 안타까워하던 고려인들이 홍범도장군 분묘수리위원회를 조직하고, 서거 8주기인 1951년에 새롭게 묘를 단장하면서 세운 것이다.

  살아생전 빨찌산 대장으로 만주, 연해주, 중앙아시아를 누볐던 홍 장군은 사후에도 떠돌아야 할 운명이었을까? 1982년 서거 40주기에는 구석진 곳에서 앞쪽으로 묘소를 또 한 번 옮기게 되는데, 흉상과 추모비를 새롭게 건립하면서 설 곳이 마땅치 않았던 묘비를 카자흐스탄 홍범도 기념사업회 회장 김 레프 니콜라예비치씨가 자신의 집에 보관해 왔던 것이다.

 50년 가까이 자취를 감췄던 묘비를 극적으로 발견해 세상에 알린 것은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를 찾아 사진 기록 작업을 하고 있는 뭉우리돌의 김동우 작가다. 지난 818일 김 작가는 큼직한 배낭과 카메라를 매고 중앙아시아로 날아갔다. 어떤 날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만나고, 어떤 날은 돌보는 이 없는 독립운동가의 묘소를 찾더니, 578돌 한글날 최고의 선물을 보내 왔다. ‘저명한조선빨찌산대장 홍범도 묘 一六八六일 출생 一九四三二十五일 사망숫자만 빼고 모두 한글! 툭 튀어나올 듯 굵직하게 새겨진 한글에서 백두산을 호령하던 나는 홍범모, 조선빨찌산 대장의 불멸의 혼과 기백을 확인한다.

뭉우리돌 김동우 작가가 찍은 홍장군 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