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이 희망

입사지원서의 ‘영어 점수란’을 없애자!

봄뫼 2008. 4. 22. 19:38

  지난 2월 정부는 영어 몰입 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영어공교육완성프로젝트를 내놓았다가 국민의 거센 저항에 부딪혔다. 정부에서 공교육을 통해 영어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는 데 반대할 이유는 눈곱만큼도 없다. 오히려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왜 여론이 좋지 않았을까? 영어가 아닌 과목, 심지어 국어와 국사까지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겠다는 국적불명의 발상에 다들 흥분한 거다. 이경숙 위원장의 ‘오륀지’와 ‘굿모닝’에는 다들 썩소를 날렸었다.

 

  국민의 반발이 만만치 않자 정부는 영어 몰입 교육 방침을 철회했다. 애초에 논의된 것이 아니었는데 와전되었다는 발표도 있었다. 그 와중에 “영어 공부, 하기만 해봐라?”라는 말까지 나와서 순간 겁을 먹었다는 국민들도 있었다. 오륀지 아줌마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현재 이경숙 씨는 뭘 하는지 전혀 언론에 등장하지 않아 궁금도 하다.

 

  온 국민이 영어를 해야 한다는 의무를 누가 조작했는지 모르지만 영어는 외국어다. 세계화라고 해서 국민 모두가 영어를 유창하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를 느끼는 사람이 하면 된다. 무역회사에서 일할 사람, 외교관이 될 사람, 학자가 될 사람들이 정확한 목표를 세우고 그에 맞게 공부하면 된다. 물론 영어를 좋아하고 재미있어 하는 사람도 해도 된다. 절대로 말리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하지 말라고 해도 알아서 한다. 그다지 필요를 느끼지 않는 사람들은 좀 더 효율적인 영어 교육 시스템 아래에서 부담 없이 공부하면 된다. 영어는 의무가 아니고 선택이어야 한다.

 

  영어를 어느 정도 수준으로 해야 할까? 고등학교만 나오면 회화가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호언한 사람들이 작년 선거 때 꽤 있었는데 그게 길거리에서 외국인에게 영어로 길을 가르쳐 주는 정도인지, 어떤 주제를 놓고 외국인과 토론을 하는 정도인지, 수출 상담을 하고 계약서를 작성하는 정도인지 구체적인 수준은 제시하지 않았었다. 뭐, 길거리 회화 정도라면 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살아가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우리나라에 놀러온 외국인들에게는 약간 도움이 되겠다. 걱정스러운 점은 아무리 호들갑을 떨어도 온 국민이 그 이상의 목표를 달성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거란 점이다. 사람에 따라 객관적으로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지자체도 문제다. 한 예로 부산시에서는 부산시의 국제화를 위해 ‘영어 100문장 외우기 운동’을 시작했다. 실제 어떤 식으로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산술적으로라면 하루에 1문장씩 외울 경우 석 달 열흘이면 끝난다. 모든 시민이 영어 100문장을 유창하게 구사한다. 계획대로면 두 달 정도 지나면 부산은 국제도시가 된다. 부산시민들의 건투를 빈다. 그런데 문득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첫째, 과연 다 외울 수 있을까? 둘째, 그 영어 100문장 외워서 뭘 하시려나?

 

  정부나 사회 지도층이 나서서 영어 안 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험악한 분위기를 조장하는 게 문제다. 우리가 영어를 못 해서 잘못된 게 있으면 알려달라는 정치학자(한림대 김영명 교수)도 있다. 민주화도 이뤘고 눈부시게 경제성장도 했다. 영어로 한 건 아니다. 민주에 대한 신념으로 독재와 투쟁했고, 열심히 기술을 익혀서 배 만들고 자동차 만들고 휴대전화 만들어서 했다. 도대체 영어를 잘 못해서 뭐가 잘못됐기에 국민들을 들들 볶느냐는 거다.

 

  글쓴이는 옆집 애나 뒷집 애가 그림을 못 그려서 비행청소년이 됐다거나 노래를 못해서 혹은 인수분해를 못해서 비행청소년이 됐다는 얘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얼마 전 영어를 못해서 비행청소년이 된 애들이 있다는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모든 국민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닌 영어를 의무화하고 강제하다 보니 이런 문제마저 발생한다. 이게 영어 권력이 안고 있는 문제이다. 그 아이에게 영어를 강요하지 않았다면, 아침저녁으로 교실에 앉혀 놓고 테이프 틀어 놓고 입을 열라고 강제하지 않았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영어 잘한다고 해서 모두 출세하고 사장이나 회장 되는 거 아니다. 미국에는 영어 잘하는 노숙자, 부랑자, 불량배들도 많다. 입시지옥, 사교육 폐해의 정점에 영어가 자리한 것은 세계화란 구호와 함께였다. 김영삼 정부 때부터 세계화 운운하며 영어 능력을 강조해 왔지만 실제로 영어는 국제무대가 아닌 국내에서 대학 진학이나 취업을 위한 경쟁의 수단일 뿐이었다. 그러니 더 이상은 본질을 호도하지 말고 불필요한 경쟁을 부추기지도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왜 업무와 관계없이 모든 입사 지원자에게 영어 점수를 요구할까? 써먹을 일이 있든 없든 일단 뽑아놓고 보자는 이기심의 발로다. 어차피 같은 월급 주고 부려먹을 거니까 욕심 부리는 거 알지만, 토익 750점(회사에 따라 더 높은 데도 있고 낮은 데도 있다) 이상만 지원 가능하다는 문구 때문에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꿈을 펼칠 기회를 박탈당하고 고뇌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게다가 그렇게 선발한 인재들을 적소에서 잘 활용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일본의 기업에는 그런 자격 제한이 없다. 영어를 잘 하면 평가에서 유리하게는 작용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지원할 수 있고 입사 가능하다. 일본은 현재도 종합 평가라고 한다. 각 과목 점수, 각자의 재능 등을 고루 고려해서 인재를 뽑는단다. 영어 스트레스는 우리랑 비슷하지만 영어를 매개로 기회를 박탈하지 않는다. 엄청난 차이다. 토익 점수가 750점 이하인 이들은 일본 회사에 지원서를 내야 할까?

 

  영어 몰입 정책은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다. 외국어인 영어를 잘 하려면 말 그대로 전념해야 어느 정도 습득 가능하다. 그렇다면 필요한 만큼의 영어 전문가를 기르는 방법이 좋다. 전공이 다른 이들에게까지 똑같은 시간과 돈과 정열을 투자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이고 감당하기 어렵다. 온 국민이 영어에만 매달리는 건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이다. 맹목적인 영어 교육은 선진화에도 장애다. 영어만 해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다른 분야의 전문성도 갖춰야 한다. 그러려면 그 쪽에도 전념해야 하는데 사람이 이것저것 다 할 수 있나? 다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슈퍼맨이고 소수이다. 1%이다. 다수는 보통 사람이다. 1%가 아닌 다수가 바라는 것을 뭘까? 영어고 뭐고 시달리지 않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맘 편하게 행복하게 사는 거 아닐까?

 

  인도에는 카스트제도가 있다. 물론 법적으로는 폐기됐지만 실상은 여전히 신분사회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단다. 그런데다가 요즘에는 영어카스트라는 또 하나의 신분제가 등장했다고 한다. 영어를 할 줄 아는 5%의 인구가 사회 상층부를 장악하고 있다는 거다. 그래서 출세하려면 영어를 꼭 배워야 하는데 이게 돈 없는 사람들은 애당초 시작도 접근도 할 수 없는 거다.

 

  남의 나라 얘기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얼마 전 우리나라 중학생들의 학력 진단평가 결과가 나왔었는데, 강북과 강남의 격차가 상당한 걸로 나타났다. 특히 영어 과목의 경우 강남 지역 학교의 평균점수가 98점대에 이른 반면 강북 지역은 80점대로 나타나 성적 양극화를 실감케 했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졌는가 하면 강남에 사는 부잣집 애들이 영어 학원에 많이 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어가 나쁜 거다. 돈이 있으면 더 많이 배울 수 있고 점수 올릴 수 있고 좋은 회사에 취직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정한 경쟁을 기대할 수 없다. 이와 같은 문제를 개선하려면 현재 우리 사회가 영어 잘하는 사람에게 주는 특혜를 최소화해야 한다. 경희대의 한학성 교수(영어 전공)는 미국 가서 살다가 저절로 영어 배운 애들한테 대학 입시 때 특혜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나는 입사지원서의 ‘영어 점수란 없애기 운동’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