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봄바람이 살랑 부는 따사로운 봄날, 영릉을 찾았다. 영릉은 조선의 네 번째 왕인 세종대왕과 부인 소헌왕후의 능이다. 정문을 들어서니 넓은 마당 오른편에 세종 동상이 서있었고, 왼편에는 세종 대에 만들어진 과학기기들이 모형으로 전시돼 있었다. 자료관인 세종전도 있어 한글뿐만 아니라 참으로 많은 업적을 남긴 임금이었다는 걸 한 눈에 실감할 수 있었다.
훈민문 안쪽에 있는 작은 연못에는 비단잉어들이 살고 있는데, 참배객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먹기 위해 입을 쩍쩍 벌리는 모습에 엄마 아빠 손잡고 소풍 나온 아이들이 까무러칠 듯이 좋아한다. 홍살문을 지나 참도를 따라 느긋하게 발길을 옮겨 정자각에 이르렀다. 정자각은 제례를 거행하는 장소이다. 평일이라 참배객이 많지는 않았지만 정성스레 향을 피우고 절을 올리는 모습이 곱다. 글쓴이도 잠시 머리를 숙였다.
능은 우뚝 솟은 봉우리처럼 정자각 위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봉분까지는 개방돼 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주 가까이서 능을 볼 수 있었다. 문인석과 무인석, 석호와 석양 등이 봉분을 지키고 서있었다. 무인석은 역시 눈매가 매서웠고, 석양과 석호의 모습은 익살스럽게도 느껴졌다. 소풍 나온 초등학생처럼 능 주위를 한참 동안 기웃거리다가 비각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비에는 세종의 일대기가 적혀 있다고 했다. 하지만 무슨 얘기가 적혀 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들여다보았지만 알 수 없었다. 아쉽게도 모두 한자로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글자 자체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글자가 잘 보였어도 세종이 언제 나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 알아볼 수 있었을까?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분의 이야기를 왜 한글로 기록하지 않았을까?
훈민정음 창제 당시 최만리를 비롯한 사대부들이 우리 글자 창제를 반대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세종의 뜻은 고인을 모신 영릉에서조차 실현될 수 없었나 보다. 전 세계 언어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칭송하는 훌륭한 글자 한글을 만들었지만 정작 한글의 주인인 우리는 그 가치를 모른 채 수백 년을 살아왔다. 만일 우리가 좀 더 일찍 그 가치를 알았다면, 그래서 좀 더 일찍 한글을 널리 가르치고 활용했다면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던 치욕의 역사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 날 이후 글쓴이는 1년에 한 번 이상(?) 영릉을 찾고 있다. 아침 일찍 서울을 떠나 영릉의 원찰인 신륵사를 둘러보고 점심으로 여주쌀밥을 먹고 영릉을 참배하는 답사를 한글문화연대 회원들과 함께 하고 있다. 연대 회원들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 한글이 주는 편리함을 누리는 이라면 일생에 한 번은 영릉에 가야 한다고 글쓴이는 감히 말한다.
2006년 봄에는 학부모와 아이들 40여 명과 함께 영릉을 찾았었다. 일정은 헌인릉-신륵사-점심-영릉-귀가였다. 압구정동에서 버스가 출발하면서부터 글쓴이는 답사 길잡이가 되었다. 보통 여행의 길잡이와는 다를 수밖에 없는 특별한(?) 임무를 열심히 수행했다. 귀한 승객들을 위해 관광버스 춤이라도 추어드리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꾹 참고 세종과 한글에 대한 이야기로 목청을 돋우었다.
“여러분, 스승의 날이 며칠이죠?”
“5월 15일이요.”
“그럼, 스승의 날이 왜 5월 15일인지 아세요?”
순간 눈이 동그래진다. 서로서로 얼굴을 쳐다보기도 하고 머리를 긁적이기도 한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만나러 가는 분이 누구시죠?”
“세종대왕님이요.”
“세종대왕님은 생일이 언제일까요?”
침묵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혹시 5월 15일 아니에요?”
“맞습니다. 바로 5월 15일이 세종대왕께서 태어나신 날입니다. 저도 얼마 전에야 알았지만 대한적십자사에서 스승의 날을 정할 때 5월 15일로 한 것은 그 날이 바로 우리 겨레의 큰 스승 세종이 이 땅에 태어난 날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종은 정말 특별한 임금이었습니다. 역사상 위대한 왕들이 존재했었지만 문자를 창제한 왕은 세종이 유일합니다. 세종은 한글을 만드셨고, 바로 그 한글로 온 백성을 똑똑하고 슬기로운 사람으로 가르쳐주셨습니다.”
글쓴이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음력 5월 15일이냐고 묻는 분도 계셨다. 옛날 분들은 생일을 대개 음력으로 쇠었으니까. 하지만 세종의 생일은 이미 양력으로 환산한 날이다. 앞으로는 스승의 날이면 세종대왕님 생신을 축하하고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의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겨야겠다는 학부형도 계셨다.
그리고 그 날, 글쓴이는 두 여자 어린이의 돌발 행동에 큰 감동을 받았다. 영릉을 참배하고 내려오던 길이었다. 정자각을 지나 참도에 들어설 즈음 두 여자 어린이가 갑자기 잔디밭에 뛰어들었다. 그러고는 땅바닥에 넙죽 엎드려 능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절을 하며 서로 주고받는 얘기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세종대왕님께 절을 올려야지. 꼭 절을 하고 가야해.”
“한글을 만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봄꽃이 만발하는 5월, 혹시 가족들과 함께 봄나들이라도 떠날 채비라면 세종과 소헌왕후가 잠들어계신 영릉이 어떨까요?
- 이 글은 '도서관이야기' 2010. 5월호(http://www.nlcy.go.kr/section/opendata/issue_story.asp)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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