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공연을 하다보면 어떤 날은 잘 되고 또 어떤 날은 잘 안 될 때도 있습니다. 생각처럼 잘 되지 않은 날은 참 속상합니다. 속상하고 속상하고 또 속상해서 다음 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게 됩니다만, 이미 다녀가신 분들께는 참 죄송할 따름입니다.
굿 닥터를 보고 가신 분들 중에 몇 분이 관람 후기를 올려 주셨습니다. 다행히 이 분들께서는 잘 보신 듯합니다.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현란한 상점의 조명과 빼곡한 공연 현수막으로 뒤덮힌 대학로를 살짝 벗어나와 혜화초등학교가는 골목길로 들어서니 이름도 근사한 '눈빛극장'이 번듯하게 서있었다.
대부분의 소극장이 지하로 더듬어 내려가야 해서 약간의 폐소공포증이 있는 나같은 사람은 쾌적한 2층에 자리잡은 극장이 퍽 마음에 든다. 눈 내리는 저녁에 공연보러 가면 더욱 운치가 있을 듯하다.
보이는 것에 사로잡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지 못하게 된지 이미 오래되어 낯익은 배우가 없는지, 노래와 춤과 화려한 무대장치는 있는지 등을 먼저 따져보는 요즘 관객의 트렌드를 당차게 뒤엎어 놓은 연극 '굿닥터'. 마음이 고달픈 우리들에게 무언가 치유의 처방을 내려줄 의사는 등장하지 않지만 스스로 무대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잔잔한 치유와 위로를 얻게 되는 '굿닥터'였다.
안톤 체홉이나 닐 사이몬의 명성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연출솜씨, 배우들의 내공있는 연기력,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몰입하는 관객의 관람태도였다. 지나치게 연극적인 발성과 몸짓을 지양하는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만큼이나 평일 저녁시간을 짬내 자못 진지하고, 발랄하게 집중하는 젊은 관객들은 소녀시대나 명품에 넋을 잃는 '핫(hot)'한 무리들과 달리 유독 빛이 나보였다.
작가이자 내레이터이며 에피소드의 주인공까지 맡아가며 기존의 '정재환'이미지를 훌쩍 뛰어넘어버린 '연극인 정재환'의 안내로 때론 폭소가 터지고, 때론 가슴이 젖어드는 6개의 세상속을 여행하게 된다. 빠르고 신속한 대중매체의 전개방식에 길들여진 나로서는 일부러 여백을 길게 두고 느린 호흡을 유도하는 '너무 늦은 행복'을 보며 조금 낯설기까지 했다. 그러나 오랜 여운으로 남는 에피소드들 중의 백미로 꼽고 싶다. 과거에 매달려 사는 것만큼이나 부질없어 보이는 미래의 염려와 오늘의 망설임이 우리 삶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또 '총성없는 전쟁'은 두 배우의 맛깔나고 압축적인 대사에 의해 후각과 미각이 살아나는 기발한 상상력의 세계를 경험하기도 했다.
근엄한 장관역을 맡은 배우와 심지어 다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등장했던 배우까지 멀쩡한 모습으로 터벅터벅 돌아다니며 무대의 소품을 옮기는 모습마저 우리의 삶과 무대가 그리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메시지처럼 다가왔다.
타인을 통해 자신을 반추하고 다른 삶을 보며 내 삶의 모습을 거울처럼 되비쳐보는 일이 맹목적으로 직진만 하는 우리들에게 왜 필요한가를 생각하게 해준 '굿닥터'. 연극다운 연극을 보는 것은 소박한 반찬을 정갈하고 정성스럽게 차려 식구들을 먹여왔던 엄마의 밥상과 마주하는 것과 같아 배부르고 등이 따스하다.
대학로 미마지 아트센터 눈빛극장- 굿닥터
길을 잘못들어 또~ 대학로를 헤메고 다녔다. 언제쯤 제대로 한번에 찾아갈 수 있을까.. 덕분에 8시 시작하는 연극의 공연시간을 놓쳤다.
10분정도 늦은 시간에 들어가려니 얼마나 미안하고 민망하던지.
다행히 평일이고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분위기를 해치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눈빛극장은 소극장이라고 하기엔 크고~ 깨끗했고 내가 좋아하는 2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역시 지하나 너무 높은 층보다 2층은 좋다. ^^
안톤체홉의 작품을 닐 사이먼이 재구성했다고 쓰여있었다. (프로그램에) 작품은 너무 좋았다.
옆에서 졸고있는 누군가와는 달리..^^ 내게는 따뜻하고, 즐겁고, 아프고, 유쾌하고, 그리고.. 슬펐다.
솔찍히 눈물이 날뻔 하기도 했다. 배우들이 그럴만한 여유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눈물은 접기로 했다. ^^
극은 6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재채기 - 겁탈 - 너무 늦은 행복 - 의지할 곳 없는 신세 - 총성 없는 전쟁 - 생일 선물
그중 무엇이 제일 좋았냐고 묻는다면.. 계속해서 우기는 의지할 곳 없는 신세.. 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아마 그녀는 현실에서 살아가는 법을 그렇게 터득한게 아니었을까? 자신이 무슨얘기를 하는지 모르는것이 아니라 그렇게라도 해서 살아가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재채기에서는 마지막에.. 소파에 누워 죽었습니다.. 라고 할때. 정말..
"어~~~ "라고 해버릴만큼 살짝 놀랐고.
계속해서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용서해달라고 사과하며 전전긍긍하는 그의 모습에서 어쩌면 저모습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외되고 낮은 계급의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너무 재미었어. 라고 할때마다 "아주 재밌었어"라고 정정해주는 정재환님 또한 소소한 재미를 주었고..
너무 늦은 행복에서는 잔잔하게 나누는 이야기와 먼곳을 응시하는 눈빛들.. 그리고 떨리듯 노래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아팠다.
차한잔 함게 마시는 것조차 오늘이 아닌 내일의 약속이 되어버리는..
"아직도 즐거운 시간을 약속할 수 있고, 내일의 행복과 사랑을 기다릴 수 있어, 하지만 물론 오늘이 아니고, 언제나 내일의 약속~" 이라고 노래하는 이제는 너무 늙어버린 시간이 많지 않은 그들을 보는게 마음 편치 않았다.
마지막.. 꿈이 무엇이었는지.. 이야기하던 피터가 남의 이야기만 쓰느라 정작 자신에 대해 잊게 되어버린 이야기를 할땐 그 쓸쓸함에 가슴이 찡했다. 정작 피터 자신은 금새 잊고 새로운 이야기를 쓰게 되지만 말이다.
배우들의 연기가 자연스러운데다 에피소드가 여러개로 나뉘어져 있어서 긴 호흡으로 연극을 보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좋지 않나 싶다.
우리의 현실과, 우리의 마음과, 어딘가 숨어있을지 모를 내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희극속에 웃음속에 풍자된 우리의 현실은 우리에게 씁쓸한 뒷맛을 남겨줄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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