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그물(인터넷)에서 ‘흔녀’를 ‘훈녀’로 만들어 준단다. ‘흔녀’가 뭘까? 처음에는 정말 의아했지만 알고 보니 별것 아니었다.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여자를 ‘흔녀’라 한다.
갑자기 구닥다리 말장난 몇 가지가 떠오른다. 우선 미녀가 있다.
미인의 다른 말이면 좋겠지만 웬걸 ‘미친 여자’를 줄인 말이다. ‘미’와 ‘여’를 따면 ‘미여’가 되어야 하지만 두음법칙 때문에 ‘녀자’로 쓰지 못하고 ‘여자’로 쓰는 것을, 이번에는 ‘미’ 다음에 ‘여’가 착 붙으면서 본디 소리와 모습을 되찾아 ‘미녀’가 된 것이다. 이쯤은 초등학생도 다 알 수 있는 얘기인데 나 지금 왜 이렇게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걸까?
미녀 하면 쌍으로 떠오르는 게 ‘추녀’다. 여기서 쌍은 욕이 아니다. 요즘 하도 욕들을 많이 해서 혹시 오해하실까 하는 노파심에 굳이 밝혔다. 좌우지간 “아, 그 여자 정말 추녀더라” 하면 듣는 그녀는 몹시 불쾌하겠지만 그게 ‘못생긴 여자’ 추녀(醜女)를 뜻하는 게 아니고 가을 ‘추’ 자 추녀, 즉 가을 여자라고 하면 나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를 머금을 것이다.
빙그레는 아이스크림 만드는 회사 이름이라고만 우기면 정말 곤란하다. 왜냐하면 입만 약간 벌리고 소리 없이 부드럽게 웃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 ‘빙그레’이기 때문이다. 그 말이 좋아서 아이스크림 회사 창업할 때 로열티 한 푼 내지 않고 공짜로 갖다 썼을 것이다. 공짜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우리말, 정말 눈물겹도록 고맙다.
최근 수년간 여자를 수식하는 말들이 참 많이 등장했다. ‘된장녀’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유명한 말이지만 그래도 비싼 명품을 즐기는 여성들 중에 스스로의 능력으로 소비활동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여성들을 비하하는 속어라는 친절한 설명을 덧붙인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엉덩이가 비치는 노출 패션으로 열띤 길거리 응원을 펼친 여인의 별명은 ‘똥습녀’였다. 똥꼬에 습기 찬 여성이라니 아, 설명하기도 부끄럽다. 지하철에서 애완견의 변을 치우지 않았다고 추정되는 몰상식한 여자에게 사리분별력이 뛰어난 누리꾼들은 ‘개똥녀’란 별명을 하사했다. 지하철에서 막말하면 ‘지하철 막말녀’가 되고 버스에서 막말하면 ‘버스 막말녀’가 되는 세상이니 아무쪼록 조심!
요즘 유행하고 있는 성형수술의 하나인 양악수술의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해 대패로 각종 과일과 채소를 다듬는 행위예술을 펼쳤다는 여인의 이름은 ‘대패녀’, 무섭지만 아름답다. 얄팍한 상술이 빚어낸 해프닝이었던 ‘홍대 계란녀’나 ‘압구정 사과녀’까지 일일이 설명하기에는 지면이 너무 아깝다.
그렇다면 ‘훈녀 만들기’란 무엇인가? 평범한 보통 여자의 외모를 지닌 ‘흔녀’라 해도 화장술과 미용술을 활용하고 장신구를 잘 붙이면 누가 봐도 훈훈한 외모를 지닌, 아름답고 훈훈한 여자로 변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리그물에는 ‘흔녀’와 ‘훈녀’를 비교하는 사진도 마구 올라와 있다. 놀랍다. 같은 사람인데 정말 다른 사람 같다. 저런 기술이라면 성형수술을 하지 않고도 누구나 ‘훈녀’가 될 수 있다. 자기 개성을 살리는 것이기도 하니 각양각색의 외모를 지닌 여성들의 미적 욕구를 채워 줄 수 있는 아주 바람직한 방식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몇가지 주의할 게 있다. (화장 지워지니)절대 씻으면 안 된다. (개성있게 차려입은 옷)벗으면 안 된다. (장신구)풀면 안 된다. 그랬다간 도로 흔녀!
이 글은 위클리 공감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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