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이 희망

‘쿨비즈’는 일본말입니다

봄뫼 2012. 6. 28. 15:31

올레는 제주도 말로 ‘길에서 집까지 연결된 아주 좁은 골목 비슷한 길’을 뜻한다는데,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트레킹 코스에 ‘올레길’이란 이름을 붙였다. 만일 ‘올레길’이란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면 제주 트레킹 1코스, 트레킹 2코스 하는 식이 되었을 것이다. 사실 ‘코스’도 좀 유감스럽다. 조금만 더 고민했다면 ‘올레 1길’, ‘올레 2길’이라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올레 1길에서 20길까지 천천히 한번 걸어 봅시다!”

‘올레 7길(7코스)’ 중간 휴게소에서 한라봉, 감귤로 만든 초콜릿, 음료수, 맥주, 막걸리 등을 팔고 있었다. 차림표에 적힌 ‘제주 순다리’가 뭘까 궁금했는데, 옛날에 제주 할망들께서 상한 보리밥을 버리지 않고 발효시켜 만들어 드시던 음료라고 한다. ‘쉰다리’라고도 한단다. 쉬었다는 뜻일까?

시원한 ‘어름물’과 ‘파인에풀’도 팔고 있었다. ‘어름물’이야 자주봤지만 ‘파인에풀’은 처음이라 신선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올레길의 표기가 올레길이 맞을까, 올렛길이 맞을까 하는 의문에 사로잡혔다. 발음이 ‘올레낄’이라면 ‘올렛길’로 적는 것이 맞겠지만. 궁금한 나머지 ‘가나다전화’에 전화를 걸었다.

“제주에서는 이 말을 ‘올레낄’이 아니라 ‘올레길’로 발음한다고 해요. 제주 말이니까 그분들의 발음을 존중해서 ‘올레길’로 적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언제나 친절한 답변! 글쓴이는 며칠 전에도 가나다전화에 신세를 졌다. 방송을 함께 하는 문화평론가께서 어딘가에 글을 투고하시면서 ‘아이돌’이라고 적었는데, 올바른 표기는 ‘아이들’이라는 지적을 받았다는 것이다. ‘아이들’이라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그 아이들일까?

“우상을 뜻하는 그 아이돌 말인가요? 잠깐만요. 아, 네. 그렇군요. 이게 발음대로라면 ‘아이들’이 맞습니다. 그런데 관용상 아이돌로도 적을 수 있네요.”

나중에 영어 사전에서 ‘idol’을 찾아보니 확실히 발음이 ‘아이돌’이 아니고 ‘아이들’이다. 그런데 왜 ‘아이돌’이 되었을까? 영어 알파벳 그대로 읽었을 수도 있지만, 일본어 ‘아이도루’에서 유래했을 수도 있다. 일본에서는 1960년대에 ‘아이도루’란 말이 등장했고, 1980년대는 아이도루 스타들의 황금기였다고 한다.

최근 서울시에서 ‘쿨비즈’를 시행했다. 무더위에도 시원하게 일할 수 있도록 반바지에 샌들 차림을 허용했다. 요즘 에너지 문제가 심각하니 에너지 절약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쿨비즈’란 말은 일본 사람들이 만든 말이다. 서울시가 이런 사연을 알고 썼든 모르고 썼든 부끄럽기는 매한가지다. 더욱 부끄러운 것은 한국패션협회에서 ‘휘몰아치는 들판에서 부는 시원한 바람 같은 옷’이란 뜻으로 ‘휘들옷’을 개발한 것에 대해, 이름이 우습다는 반응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정말로 우스운 것은 누구일까?

제주에서 만난 올레와 순다리는 제주다워서 좋았다. 올레길의 올바른 표기가 궁금해서 가나다전화에 전화도 걸어 보았다. 아이돌과 쿨비즈 때문에 좀 언짢았지만, 휘들옷 덕분에 몸과 마음이 시원해졌고, 줏대 있는 언어생활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좀 이상한 사람일까?

가나다 ☎1599-9979 오전 9시~오후 6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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