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이 희망

뭐든지 다 되는 한글… 한글은 민주주의다

봄뫼 2012. 10. 2. 23:45

서기 7세기 신라에는 애국심이 강한 두 청년이 있었다. 자신들의 뜨거운 마음을 돌에 새기고 싶었지만 우리 글자가 없어서 중국의 한자를 빌렸다.

 

二人幷誓記 天前誓 今自三年以後 忠道執持 過失无誓〔두 사람이 함께 맹세해 기록한다. 하느님 앞에 맹세한다. 지금으로부터 3년 이후에 충도(忠道)를 집지(執持)하고 과실이 없기를 맹서한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임신서기석은 한문이 아닌 신라 말이다. 한문이라면 어순상 ‘충도집지(忠道執持)’가 아니라 ‘집지충도(執持忠道)’여야 한다. 두 사람은 용케 어려운 한자를 알고 있었기에 자신들의 충심을 영원히 남길 수 있었다. 하지만 한자를 모르는 평민들은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갖고 있어도 글 한 쪼가리 남기지 못했다. 답답한 세월이 무려 15세기까지 계속되다가 세종이라는 놀라운 왕이 나타나 한글을 창제했고, 비로소 누구든지 자신의 말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16세기 안동에 살던 여인(원이 엄마)은 먼저 간 남편에게 ‘한글’로 편지를 썼다.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 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한글이 나오기 전까지 한자는 지배층의 전유물이었고, 지배층의 이익을 지켜 주는 요지경이었다. 평민들도 열심히 공부하면 한자를 습득할 수는 있었겠지만, 힘든 농사일을 하면서 한자를 배운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게다가 한자는 몹시 어려운 글자였다. 사람인(人) 자나 큰 대(大) 자 정도라면 어렵지 않지만, , , , , 같은 글자들은 보기만 해도 속이 울렁거린다. 노신은 “한자가 망하지 않으면 중국이 망한다.”라고 절규했고, 지금 중국은 10만 자에 가까운 한자를 버리고 간체자 2천여 자를 쓰고 있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아 보인다.

 

일본은 한자의 형태를 간소화해서 50개 정도의 가나문자를 만들었다. 현재는 히라가나 46자, 가다가나 46자, 합해서 92자라 숫자도 많지는 않다. 그러나 일본은 가나문자만으로는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 한자를 버리자, 로마자를 쓰자 등등 문자개혁의 목소리도 높았지만 가나문자에 상용한자 2천1백36자를 섞어 쓰는 일한문 혼용의 불편한 문자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過激派が米領事館襲擊に關與か’라는 일본어 문장에서 가나문자는 달랑 3자만 쓰였다. 아, 불편한 가나문자여!

 

그러나 우리의 한글은 어떤가?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 등장했던 아이들이 한글을 배우자마자 자신의 이름을 척척 쓰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배우기 쉽고 쓰기 쉽다는 한글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도저히 일 때문에 한자를 공부할 짬이 없었던 농상공인들도 한글은 쉽사리 배울 수 있었다.

 

광복 후 남과 북은 사상적으로 갈라섰지만 양쪽 모두 한글을 대중의 글자로 선택했다. 한글로 공부하고 기술도 익히고 취직도 하고 투표도 했다. 배우기 쉬운 한글은 근로대중에게 어울리는 글자였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었다.

 

-  이 글은 위클리 공감에 실렸습니다.

http://www.korea.kr/gonggam/newsView.do?sectId=gg_sec_24&newsId=inH2gTD1MDGJM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