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고등학생들이 출연한 토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밤 11시30분, 전자우편으로 발송된 대본을 열어 보니, 5회는 목포와 대전, 6회는 경기도 성남과 김포에 있는 학교 학생들이 녹화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보통 때라면 5회를 오전에 하고, 6회를 오후에 하는 게 맞겠지만, 5회 출연 학생들 거주지역이 목포와 대전 녹화 순서를 오후로 바꿨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9시30분 녹화장 대기실.
“어, 일찍들 왔구나. 어느 학교니?”
“네. 목포 ○○학교입니다.”
“뭐? 목포? 아니 너희, 그럼, 목포에서 언제 올라왔니?”
“어제 와서 유스호스텔에서 잤습니다.”
“그래? 아, 그래! 그럼, 간밤에 합숙 훈련 좀 했겠구나?”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설마 했던 일이 실제로 벌어져 있었다. 목포 학생들을 아침에 오라고 할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오전과 오후 두 차례의 녹화가 모두 끝나고 차를 한 잔 마시면서 사연을 물어보았다. 이번 녹화부터 팀에 합류한 한 PD는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왜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네요”라고 했다. 총감독은 “그러게요, 목포 애들이 왜 오전에 녹화를 하게 됐을까요?”라고 했다.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어떻게 출연 학교, 녹화 순서를 당일까지 아무도 모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사연을 알고 있는 것은 자리에 없는 담당 작가뿐이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너무 궁금해서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오늘 목포 학생들이 오전에 녹화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아니요, 그렇지는 않은데요, 방송 순서가 5회여서 그냥 그렇게 했는데요, 아침에 나와서 보니까 애들이 좀 힘들었겠더라고요.”
“아니, 그걸 아침에야 깨달았습니까? 방송 순서가 그렇더라도 녹화 순서를 오후로 바꿔주면 되지 않았나요?”
“예. 그러면 되는데요, 제가 일이 너무 바빠서 미처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목포 학생들을 아침 일찍 오게 하고, 그 사실은 녹화시각을 통고한 단 한 사람만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목포 학생들은 전날 올라와야 했고, 목포와 함께 녹화한 대전 학생들도 아침 7시 기차를 타기 위해 5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녹화가 오후였다면 아이들이 그렇게까지 고생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어른들이 그만한 배려도 못하나? 생각이 없어도 이렇게까지 없을 수 있을까? 대화가 없어도 이렇게까지 없을 수 있을까?
- 이 글은 위클리공감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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