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와서 장기 체류하는 일본인들이 공통적으로 놀라는 몇 가지 현상이 있다. 첫째는 상대적으로 싼 교통비다. 일본은 교통비가 정말 비싸다. 몇 년 전 도쿄에서 지하철을 타고 1시간쯤 이동했을 때, 요금이 우리 돈으로 만 원 가까이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비슷한 시간이 걸리는 제물포에서 서울역까지 1,600원 정도밖에 하지 않는 우리하고 비교하면 정말 엄청난 차이다. 택시비는 말할 것도 없다. 일본은 택시가 안전하고 편리하고 깨끗하다고 소문이 나 있지만, 워낙 비싸서 잦은 여행 경험에도 불구하고 한두 번밖에 타 본 적이 없다. 이렇게 큰 차이가 나기에 일본인들은 우리 지하철을 타면서 거의 거저라고 느낀다. 서울에서 시행하고 있는 버스와 지하철 환승제도까지 알게 되면 너무 놀라고 감동해서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일본인들을 놀라게 하는 또 다른 하나는 후한 인심이 짙게 배어 있는 우리의 음식 문화다. 몇 년 전에 일본어 선생 마미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막 한국 생활을 시작했을 때, 학원 근처에 있는 식당에 가서 된장찌개를 주문했는데 시키지도 않은 김치와 콩자반, 시금치, 두부부침 등이 상 위에 올라와서 무척 당황스러웠단다. ‘어, 시키지도 않았는데, 왜 이런 게 나왔을까? 잘못 나온 거 아닌가? 그냥 먹어도 되는 건가? 공짜인가? 돈 따로 받는 거 아닌가?’ 걱정스러운 마음에 이런저런 추리를 하고 있었는데, 같이 간 한국 선생님으로부터 일본하고 달리 우리나라는 밑반찬을 그냥 주니까 마음 놓고 먹어도 된다는 설명을 듣고 무척 놀라고 감동했단다.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한국은 참 좋다, 일본에서는 단무지 하나라도 따로 주문해야 하고, 다 돈을 내야 하는데, 한국은 시키지도 않은 여러 반찬을 막 주는데다 떨어지면 또 준다며 우리나라의 넉넉한 인심을 음식에서 확인했다고 한다.
또 하나 이들을 놀라게 하는 것은 학원 버스다. 버스를 보고 왜 놀랄까? 버스가 커서? 자기네들 것보다 좋아서? 일본에서는 보지 못하던 신형이라서? 쌩쌩 빨리 달려서? 물론 빨리 달리는 것은 맞지만, 절대 그런 차원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학원 버스가 참 많다.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들을 위한 것까지 각종 학원 버스가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학생들을 가득 태우고 거리를 달린다. 늦은 밤, 학원이 끝나는 시간이면 주변에 줄지어 서있는 많은 버스들을 볼 수 있다. 우리에게는 일상적인 풍경의 하나이고 매우 익숙한 광경이지만, 일본인들에게는 몹시 생경한 장면이다. 대부분이 일본에서는 이런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물론 일본에도 우리의 입시 학원 같은 곳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부가 아닌 일부가 이용하는 것 같다. 일본도 입시가 있고, 대학의 서열도 있지만, 전 학생이 어렸을 때부터 입시에 매달리는 것은 아니고, 고등학생들도 방과 후 여가를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 같다.
일본 드라마에 묘사된 일본 청소년들의 생활은 우리 청소년들과는 크게 다른 것 같았다. 어릴 때부터 부모의 바람이나 자신의 꿈과 희망에 따라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준비하는 학생들도 있고, 이런 학생들은 하루 종일 공부에 매달리는 것 같았다. 중학교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생활을 그린 드라마를 본 기억도 있다. 하지만 나머지 학생들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다. 모든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들에게 공부만을 강요하지도 않아서, 그들은 비교적 자유롭고 낭만적인 학창 시절을 보내는 것 같았다. 학교가 파하면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동아리 활동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방과 후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소년들도 있는데, 사회 경험도 하고 학비나 용돈을 스스로 해결한다. 요즘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 형식적으로 치러지는 문화제 같은 축제도 여전해서, 학창시절 추억의 장이 될 그 날을 위해 많은 학생들이 시간을 투자하고 땀과 열정을 쏟는다. 이런 일본 청소년들의 삶은 자유롭고 다양하다. 1등이든 꼴찌든 성적에 관계없이 일류 대학 진학이라는 똑같은 목표 아래 획일적으로 사는 우리 청소년들과는 매우 다르게 보였다.
요즘 청소년들은 참 안쓰럽다. 우리 세대 때에도 사당오락이라는 말이 있어서 학습과 입시에 대한 부담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입시 지옥이라는 말도 역사가 무척 깊지만, 그래도 그 때는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학교가 파하면 숙제도 해야 하고, 예습과 복습도 해야 했지만, 골목에 나가 친구들과 팽이도 돌리고, 구슬치기도 했고, 공 하나만 있으면 축구도 가능했다. 사슴벌레나 매미를 잡기 위해 인근 야산을 누비고, 밤이 이슥하도록 술래잡기를 하며 동네 구석구석을 쏘다니던 기억도 또렷하다. 칠흑 같은 어둠을 틈타 딸기나 수박 서리를 하면서 간 떨리는 스릴을 만끽하기도 했었다. 일류 대학을 목표로 한 아이들,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온종일 책과 씨름했겠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취미 활동, 놀이, 운동 등 그들 나름대로의 생활이 있었다. 모든 게 다 좋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게 어린이답고 청소년다운 삶이었다고 생각한다.
- 문학사상 특대호. 201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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