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촌은 1911년 한인들이 건설한 마을이었다. 이전 한인들은 블라디보스토크의 개척리(開拓里)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1911년 3월 연해주 군무지사(軍務知事) 대리인 곤닷치(Gondatti)는 유행병(콜레라·장티푸스·페스트) 방지 등 위생상 이유로 개척리의 한인들을 이주하도록 하였다. 개척리의 폐쇄 결정으로 한인들은 새로운 시가市街로 옮겨야했다. 이에 개척리 북쪽 언덕으로 이주하여 ‘신한촌(新韓村)’이라고 하였다.
신한촌은 새로이 블라디보스토크 한인사회의 중심지가 되었다. 권업회·권업신문사·한민학교 등이 세워지면서 독립운동 기반도 마련하였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 당국과 일제의 감시와 탄압으로 어려움도 많이 겪었다. 1920년 4월 참변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후 1937년 스탈린의 대탄압으로 중앙아시아지역으로 한인들이 강제이주 당하면서 신한촌은 폐허로 변해갔다. 현재 신한촌은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어 원래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1999년 8월 15일 사단법인 해외한민족연구소에서 한인들의 역사와 독립운동을 선양하기 위하여 신한촌 하바로프스카야 거리(Khabarovskaya Ulitsa)에 기념탑을 건립하였다.
한민학교
1912년 3월 신한촌에 세운 4년제 고등소학ㆍ중등과정의 민족교육기관
1911년 창립된 권업회는 민족주의 교육을 고취시키기 위해 먼저 블라디보스톡 신한촌에 있던 한인학교인 계동학교를 확대ㆍ개편하여 한민학교를 설립하고 연해주 한인사회에서 민족주의 교육의 중추기관으로 삼았다. 이 학교는 블라디보스톡 시내에 위치한 오랜 한인 거주 구역인 개척리에 있었으나, 개척리를 러시아 당국이 페스트 유행 등의 위생문제를 구실로 시 북쪽 변두리 지역인 아무르만이 내려다보이는 구릉지대에 위치한 신한촌으로 강제로 이주시켰다.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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