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잘하는 아이가 공부도 잘한다

아이들을 위한 표준발음 해설서 - 머리말

봄뫼 2008. 11. 9. 23:41

 

  2003년에 출간한 책입니다.

 

  까다로운 우리말 발음에 대한 저의 생각을 담았던 책입니다. 오늘부터 틈나는 대로 책의 주 내용을 이 방에 다시 올리겠습니다. 우선 머리말부터!

 

  머리말

 

  1990년쯤 청춘행진곡 사회자가 되어 7년 무명에서 벗어날 때 사람들이 그랬다. 키 크고 얼굴 잘 생기고 말을 잘 한다고. 요즘 애들이야 다들 커서 나 정도 별 거 아니지만 20년 전에는 연예계에 나처럼 키 크고 싱거운 애들 별로 없었다. 요즘 애들은 다 얼굴 희고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옥동자가 따로 없다. 오죽하면 요즘 인기 있는 개그맨 정종철이 옥동자로 떴을까?

 

  “야라뇨? 내 이름은 옥동자예요!”

 

  다행인 것은 이름이 옥동자라는 거다. 어쨌거나 20년 전에는 멀쩡하게 생긴 애들 드물었다. 그러니 시쳇말로 원조 ‘꽃미남’이었다고 하면 비웃을까? 개그 손놓은 지 꽤 됐는데 오랜만에 한 번 웃긴 걸로 하자. 그런데 내가 말을 잘 한다고? 과연 그럴까?

 

  영화 YMCA 야구단을 봤다. 송강호가 대궐 같은 기와집 높은 담장 너머로 축구공을 일부러 던져놓고는 슬며시 담을 뛰어넘는다. 걸리면 공 꺼내러 왔다고 말하겠단다. 그 장면을 보니 추억의 개그가 떠오른다.

 

  “일단 은행에다 공을 던져 넣는 겁니다. 그런 다음 들어가서 안 들키면 금고를 털고 들키면 공 꺼내러 왔다고 하는 겁니다.”

 

  ‘일요일밤의 대행진’이란 프로그램의 ‘전도협(전국도둑놈협의회)’에서 내가 매주 되풀이하던 대사다. 크게 유행되지는 않았지만 그 후 내가 청춘행진곡으로 유명해지자 그 때 그 대사가 아주 인상적이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명장면 명대사’였던 거다. 좌우지간 청춘행진곡으로 뜨면서 말을 잘 한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정말 그랬을까? 사실 난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나는 원래 말이 좀 어눌하다. 말하는 속도도 느린데다가 말을 하면서도 무슨 말을 할까 말까 생각을 많이 하느라 뜸을 많이 들이는 편이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 한 번 방송을 할 때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연습에 투자했는지, 녹화 직전까지도 화장실에서 똑같은 얘기를 질리도록 반복해서 연습했던 일들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그런데도 당시 방송 테이프를 틀어보면 너무 느려 터져서 속 터지는 건 물론이고 저래 가지고 어떻게 떴을까 하는 의문마저 생긴다. 첫 번째 불가사의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지금도 말을 잘 못한다. 방송에 발을 담근 지 20년이 되는데도 여전히 말을 잘 못한다. 날마다 라디오 생방송을 하면서도 말을 잘 못한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에는 차를 달려 서해바다에 가고 싶습니다. 거기 아무데나 바닷가에 서면 세상에서 제일 낮게 내리는 비를 볼 수 있겠지요. 아무리 큰 비가 내려도 젖지 않는 넓은 바다가 그 큰 아가리로 무수히 떨어지는 빗방울을 몽땅 빨아들이는 멋진 풍경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을 겁니다.” 뭐 이렇게 좀 그럴듯하게 얘기하고 싶은데도 고작 한다는 소리가,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에는 바닷가에 가면 좋을 거예요. 운전 조심하고 비 오니까 회는 먹지 맙시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어쩌면 그리도 혀가 돌아가지 않을까?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방송국에서 밥을 먹고 사는지, 두 번째 불가사의다.

 

  어떤 분야에서든 그 사회를 이끄는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덕목을 갖춰야 하는데 꼭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좋은 화술이다.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좋은 화술은 필수이다. “침묵은 금이다.”라는 격언도 있지만 그건 빈 수레가 요란한 것처럼 쓸데없이 영양가 없는 얘기만 늘어놓는 사람들 입 좀 다물라는 얘기이다. 침묵이 금이라면 웅변도 금이다. 어린이라면 누구나 큰 꿈을 갖고 살아야 한다. 개성 있게 사는 것도 좋지만 저마다의 분야에서 일인자 혹은 지도자가 되어야겠다는 꿈을 꾸며 살아야 한다. 그러려면 뚜렷한 자기 생각이 있고 그걸 남에게 잘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창 말을 배우고 익히는 시기의 자녀를 둔 어머니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말! 정말 중요하다. 말을 잘 해야 할 이유는 많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말이 내 생각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는 거다. “벙어리 냉가슴 앓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말을 못하면 속이 썩는다는 말이다. 속이 썩으면 사람이 어떻게 살까? 아마 죽지 못해 살 것이다. 벙어리는 아니지만 밥 달라는 말도 목이 마르다는 말도 못하면 어찌 될까? 말 잘 하면 대통령도 될 수 있다. 대통령이 아니 되더라도 배고프면 밥 달라고 말하고, 목마를 때 물 달라고 말하고, 졸릴 때 자고 싶다고 말하고, 놀고 싶다고 일하고 싶다고 사랑한다고 결혼하고 싶다고 우리 애를 구박하지 말라고 이웃을 사랑하며 어울려 함께 살자고, 그러니 결식아동도 돕고 북한에 밀가루도 보내고 미선이와 효순이를 살려내자고 분명하게 ‘말’ 해야 한다.

 

  초등학교에서는 국어시간에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등을 가르친다. 말하기의 본질, 말하기의 원리, 말하기의 태도, 바르게 읽기 등을 가르치기는 하되 반복적으로 연습하고 훈련하는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서인지 우리말을 발음하는 데 기준이 되는 표준발음법을 알아도 그에 따라 발음할줄 아는 어린이가 몇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애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이다. 대학에서 고등교육을 받았다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석사나 박사들도 우리말 발음이 엉망이다. 이것이 세 번째 불가사의이고 내가 이 글은 쓰게 된 이유이다. 외국사람들은 배우면 배운 만큼 말에서 티가 난다고 한다. 그가 하는 말의 내용과 어휘구사는 물론 발음까지도 다르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차이가 없을까?

 

  첫째, 우리말도 발음을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말 발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둘째, 간혹 그 중요성을 아는 이들이 있어도 발음연습을 수업을 통해서 집중적으로 지속적으로 하지 않은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학급회의를 하면 반장과 회장 그리고 임원 몇이 앞에 나가서 몇 마디 하면 끝이다. 요즘 애들 가운데 자기 의사를 또렷하게 말하는 애 드물다. 책임은 제대로 가르친 적도 없으면서 애꿎은 애들에게만 말 못 한다고 지청구를 해대는 어른들에게 있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한심스럽기 짝이 없는 언어생활을 바로 잡을 수 있을까? 우리는 왜 우리말 발음의 기본이랄 수 있는 연음법칙 정도를 모를까?

 

  늦었지만 이제라도 시작하자. 학교에서는 애들에게 정확한 우리말 발음을 가르쳐주고 반드시 연습을 시키자. 잘 하는 애들은 칭찬해 주고 더욱 사기를 북돋워 주자. 집에서는 부모와 형제자매가 모두 교사가 되자. 온 식구가 오순도순 모여 앉아 얘기할 때 서로서로 올바른 발음을 알려주고 잘못을 교정해 주자. 우리 사회의 모든 공간에서 우리말 발음이 좋다 혹은 나쁘다고 얘기하자. 이런 행위를 생활화하자. 생각과 계획이 있으면 실천하는 일만 남는다. 두려워하지 말고 걸음마를 하는 심정으로 한글맞춤법 표준발음법부터 들여다보자. 이 책에는 글쓴이가 직접 보고들은 일화들과 함께 표준발음법에 대해 설명한 글들이 담겨 있다. 되도록 이해하기 쉽게 썼다. 그러므로 애들이 직접 읽을 수 있지만 어머니가 읽고 아이와 함께 공부하는 데 이 책이 쓰였으면 한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실천은 곧 연습이다. 어머니가 먼저 연습하고 아이와 함께 연습을 반복해야 한다. 일상을 통해서도 언제나 신경 써서 발음함으로써 모범을 보이고 독서를 할 때는 최소한 하루 20분씩 낭독한다. 아이들에게도 같은 습관을 길러주자. 중요한 것은 우리의 2세들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어머니들, 애들 때문에 새삼스런 고생을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고 보람 있는 일이다.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는 교육이다.

 

  처음에는 좀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만, 기초를 닦는다는 마음으로 꾸준히 하다보면 어느새 발음이 정확해지고 말이 분명해진다. 저절로 자신감이 생긴다. 가족과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의사표현이 또렷해지고 선생님 앞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잘 말할 수 있다. 훗날 좋은 생각과 큰 지혜의 소유자가 되었을 때는 수백만 대중 앞에 서서 자신의 생각을, 진정 하고픈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거듭 강조하건대 좋은 말은 정확한 발음에서 시작된다. 이 책이 좋은 화술을 기르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지는 못하지만 반드시 든든한 밑거름이 되어 줄 것이라 믿는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꿈나무들이 말을 바르고 정확하고 분명하게 할 수 있도록 어머니와 함께 길잡이가 되어 드릴 것이다.

 

  어머니의 말이 정확하면 꿈나무들의 말은 저절로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