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 사람 믿어주세요!”
기억하리라! 13대 대통령 선거 때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그러고는 대통령이 된 후에는 입을 싹 씻고 국민 몰래 비자금을 모았다. 처음부터 의심스러웠지만 믿어 달라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대통령의 말이 이랬으니 우리말이 건강하게 발전할 수가 없다. 거짓말도 거짓말이지만 자기 자신을 ‘나’라고 한 것도 문제다. 왜 국가의 주인인 국민 앞에서 감히 ‘나’라고 한 것인가? 당연히 ‘저’라고 했어야 한다.
“저 이 사람 믿어주세요!”
돌이켜보면 정말 웃기는 일이다. 이렇게 공손하게 말했어도 찍을까 말까 엄청 고민했어야 하거늘, ‘나’ 어쩌고 하는데도 팍팍 찍어줬다.
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은 땡전 뉴스로 유명하다. 전두환 대통령 재임 시절 방송사의 9시 뉴스는 시작하기가 무섭게 “전두환 대통령은 오늘 오전 청와대에서 새마을운동 관계자들을 표창하고 노고를 치하했습니다.”라는 말로 시작되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국민 앞에서 뭔가 할말이 있을 때면 아주 낮은 목소리로 “본인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국가와 국민 앞에 엄숙히 어쩌고저쩌고”라며 거의 웅얼거렸다. 마치 어린 아기가 옹알거리는 듯한 소리를 재임 기간 내내 토해 냈다. 혹시 투박한 사투리 억양을 좀 덮어 보려고 그런 건 아니었을까?
“제주도를 강간의 도시로 만듭시다!”
이 무슨 끔찍한 소리인가?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대통령이 한 말이란다. “관광의 도시”를 [강가네 도시]라고 잘못 발음하여 듣는 이들을 기절초풍시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말을 잘하는 대통령이다. 청와대에는 대통령 연설담당비서관도 있어 대통령 연설문을 기초하고 다듬고 갈고 닦아 그 말을 풍요롭게도 하고 멋지게 하는 둥 살아 숨쉬게 한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워낙 달변이어서 연설문에 의지하기보다는 자신이 한 메모를 보며 즐겨 말하였다고 하는데, 호남사투리억양이 강했지만 구사하는 어휘는 대개 표준말이었다. 그래도 말끝마다 튀어나오던 “그러지 아니에요?”는 익살꾼들의 흉내에서 비롯되어 유행어가 되기도 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가? 비교적 말을 쉽게 직설적으로 하는 편이다. 어려운 말이나 미사여구를 피하기도 하는 듯 하다. 그러므로 어떤 말을 해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더러는 거친 표현을 문제 삼는 이도 있고 영남사투리 억양도 강하다. 그래도 긍정적인 것은 “맞습니다, 맞고요!”라며 상대의 말을 잘 듣고 긍정하는 화법을 구사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말끝마다 “에이 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를 내뱉으면 어찌 될까? 하지만 “그러니까 이제 막 가자는 거지요.”하는 식의 경솔함은 흠이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를 잇는 참여정부의 인상은 매우 깔밋하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국민들의 정책제안과 인사추천이 이루어졌다. 말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의 말을 잘 듣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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