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방송에서 초등학생 대상으로 방영하는 <퀴즈 천하통일>이란 프로그램을 잠깐 진행한 적이 있다. 매주 초등학생 4명이 1차전부터 3차전, 그리고 결승전까지 일대일 맞대결을 펼치는 퀴즈 프로그램이었다. 방송을 보다가 혼자 결정하고 예선부터 참여해 본선에 올라온 친구도 있었지만 대개는 부모님이나 선생님 또는 친구들의 강력한 권유와 추천으로 참가한 친구들이었다. 당연히 이들의 실력은 그들의 동네에서 이미 공인된 것이었고 그런 만큼 똑똑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그렇게 똑똑한 친구들이 자기소개를 제대로 못한다는 거다.
“안녕하세요? 저는 아무개 초등학교 5학년 홍길동입니다. 승부를 떠나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말로는 승부에 초연하겠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속마음은 다들 퀴즈왕이 되는 게 목표다. 그러니 자연 승부는 불꽃을 튀게 마련이고, 그래야 보는 사람도 즐겁다. 승부욕 없이 이겨도 그만 져도 그만인 대결은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하나마나하다. 그런데 자기소개가 뭐가 잘못됐다는 건가? 위 문장처럼 ‘홍길동’이나 혹은 ‘홍길순’이가 나오면 틀릴 일이 없다. 글자 그대로 발음하면 된다. 그러나 만일 이름이 ‘홍길자’라면 문제가 생긴다.
“안녕하세요? 아무개 초등학교 6학년 홍길자입니다.”
이때 거의 모든 친구들이 [홍길자입니다]라고 발음한다. 자신의 이름이 ‘홍길자’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홍길자’라고 말하고 잠시, 0.5초 동안 사이를 두고 ‘입니다’라고 하는 친구들도 보았다. 그러나 이는 잘못이다. 우리말의 전통적인 어법상 받침이 없는 글자 뒤에 ‘입니다’가 오면 앞 글자 받침자리에 ‘ㅂ’을 붙여 발음한다. 그러므로 [홍길자입니다]가 아니고 [홍길잡니다]라고 해야 한다. 이름이 ‘송혜교’라면 [송혜굡니다]라고 ‘박명수’라면 [박명숩니다]라고 발음해야 한다. 물론 쓸 때는 ‘송혜교입니다’, ‘박명수입니다’라고 써야 한다. ‘송혜굡니다’, ‘박명숩니다’라고 쓰면 틀린다.
텔레비전에 가끔 동부화재광고가 나온다. 탤런트 전광렬이 나오는 광고인데, 차가 고장 났는데 지나가다 보았는지 보험회사의 긴급서비스반이 슈퍼맨처럼 나타나 도와준다. 이 때 동부화재 가입자가 아니라고 얘기하지만 ‘보험가입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말하면서 위기에서 구해준다. 가입여부를 떠나 동부화재가 엄청 인도적인 회사라는 것을 강조하는 장면이다. 바로 이 광고에 “차보다 사람이 먼저입니다”라는 광고문구가 나오고 동시에 [차보다 사라미 먼저입니다]라고 성우의 내레이션이 깔린다. 그러나 자신을 소개할 때 이름을 발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광고에 나오는 [먼저입니다]는 틀렸다. 당연히 [차보다 사라미 먼접니다]라고 발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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