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는 일본식으로 발음하는 외래어가 참 많은데, 대표적인 게 바로 빠떼리이다. 영어 ‘battery’를 우리처럼 ‘배터리’라고 발음하지 못한 일본사람들이 순수하게 일본식으로 ‘빠떼리’라고 한 것이고,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던 우리도 그들처럼 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흘렀다. 국어순화운동도 열심히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배터리’나 ‘축전지’가 아닌 ‘빠떼리’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습관이란 참 무서운 것이다. 현재도 일본사람들은 ‘album’을 ‘아루바므’라고 하고 ‘McDonald’를 ‘마꾸도나루도’라고 발음한다.
김유신의 말 이야기를 잘 알 것이다. 방탕한 생활을 하던 김유신이 어느 날 정신을 번쩍 차리고 천관녀가 있는 술집에 가지 않기로 결심하였는데, 말 잔등 위에서 꾸벅꾸벅 조는 사이에 그만 말이 평소 습관대로 천관녀의 집을 찾아갔다. 주인과 함께 다니던 그 길이 말에게 너무나도 익숙했던 것이다. 이윽고 잠에서 깨어나 모든 것을 알아차린 김유신은 미련 없이 말의 목을 자른다. “너 나를 천관녀의 집으로 데리고 가면 죽어!”라고 경고 한 번 없이 행해진 그야말로 느닷없는 돌연한 행동이었다. 말한테 무슨 잘못이 있을까? 말 한마디 못하고 세상을 떠난 말만 불쌍하다. 어쨌거나 오랫동안 몸에 밴 것들은 무섭다. 쉽게 고쳐지거나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언어습관도 처음에 잘 들여야 하는 것이다.
중학교 때 버스를 타면 차장들이 목청껏 외치던 말이 있었다. ‘오라이’와 ‘스톱’이다. ‘오라이’는 승객이 다 탔으니 가도 좋다는 신호이고 스톱은 내릴 사람이 있으니 서라는 신호이다. ‘오라이’는 영어 ‘all right[올롸잇/올라잇]’이고 ‘스톱’은 ‘stop[스톱/스탑]’이다. 차장이 사라진 지금 ‘오라이’는 거의 쓰지 않지만 ‘스톱’은 ‘스탑’과 함께 여전히 쓰이고 있다. 얼마 전까지 서울방송 도전천곡의 <도전희망50곡>에서도 ‘스톱’을 썼는데, 사람에 따라서 ‘스톱’, ‘스토프’, ‘수도쁘’, ‘스탑’, ‘스땁’ 등 가지각색이었다. 그러나 최근 ‘멈춰!’로 바뀌었다.
“도전희망50곡 돌려주세요!”
“멈춰!”
‘스톱’과 ‘멈춰’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현재 ‘스톱’은 외래어로서 우리말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멈춰’는 본디 우리가 쓰던 토종말이다. 둘 중 어떤 말을 쓰건 잘못됐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외국에서 들어온 ‘스톱’보다는 이왕이면 토종말인 ‘멈춰’를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 것을 사랑하고 널리 쓰는 마음은 판소리나 탈춤, 농산물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언어생활을 하는 데도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동차와 관계되는 분들이 잘 쓰는 말 중에 ‘빠꾸’가 있다. 영어 ‘back’의 일본식 발음이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은 영어 ‘back’을 발음할 때 [백] 정도로 한다. 그러나 차를 몰거나 운전자한테 신호를 할 때는 여전히 ‘빠꾸’가 튀어나온다. 타이어에 구멍이 났을 때는 어김없이 ‘빵꾸(펑크,puncture)’를 때운다.
나사를 돌리는 공구인 ‘드라이버(driver)’를 ‘도라이바’라고도 하고 ‘텔레비전’을 ‘테레비’라고 하고, 변압기 ‘트랜스(trans)’를 ‘도란스’, ‘페인트(paint)’를 ‘뺑끼’, 환풍기 ‘팬(fan)’을 ‘후앙’, ‘머플러(muffler)’를 ‘마후라’, ‘셔터(shutter)’를 ‘샷따’, ‘샐러드(salad)’를 ‘사라다’, ‘배지(badge)’를 ‘빠찌’, ‘범퍼(bumper)’를 ‘밤바’, ‘팬티(pants)’를 ‘빤쓰’라고 한다. 이밖에도 많지만 이쯤에서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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