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눈이 들어가니 눈물인가, 눈물인가?
철수는 그 많던 말들이 밤새 도망갔다고 말했다.
밤을 구워 먹기에는 밤이 좋다.
초등학교 때인지 중학교 때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여하튼 우리말의 장단음을 배우며 외웠던 문장들이다. 어떤 눈은 길게 소리를 내야 하지만 어떤 눈은 소리를 짧게 내야 한다. 말도 긴 게 있고 짧은 게 있으며 밤도 긴 것과 짧은 것이 다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는 아해들이 있을지 모르나 같은 글자라고 해서 소리가 다 같지 않다는 거다. 길게 소리 내는 ‘눈’은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고 짧은 것이 바로 얼굴에 달려있는 크고 작은 우리들의 ‘눈’이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재잘거려서 수다스럽다고 말이 많다고 비난을 받는 말은 긴 ‘말’이고 따가닥따가닥 말발굽소리를 내며 천릿길을 단숨에 달리는 ‘말’은 짧다. 껍질을 까기는 힘들지만 일단 까기만 하면 맛있는 속살을 맛볼 수 있는 나무의 열매는 긴소리가 나는 ‘밤’이고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고 말할 때의 ‘밤’은 짧다. 그런데 요즘에도 학교에서 이런 거 가르치나? 우리 어머니들 이런 거 기억하시나?
제3장 제6항 모음의 장단을 구별하여 발음하되, 단어의 첫 음절에서만 긴소리가 나타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1) 눈보라[눈ː보라] 말씨[말ː씨] 밤나무[밤ː나무]
많다[만ː타] 멀리[멀ː리] 벌리다[벌ː리다]
(2) 첫눈[천눈] 참말[참말] 쌍동밤[쌍동밤]
수많이[수ː마니] 눈멀다[눈ː멀다] 떠벌리다[떠벌리다]
오늘날에도 우리말의 장음과 단음은 존재한다. 그리고 장음은 원칙적으로 첫음절에서 발생한다. 그러므로 ‘눈보라’라고 할 때의 ‘눈’은 길게 소리 내야 하지만 ‘첫눈’이라고 할 때의 ‘눈’은 소리의 길고 짧음이 없다. 말과 말, 밤과 밤도 마찬가지이다.
말솜씨 -> 말ː솜씨맺음말 -> 맺음말
밤나무 -> 밤ː나무날밤 -> 날밤
어떤 이들은 장음과 단음을 정확하게 구별하지 않아도 문장 속에서 ‘눈’과 ‘눈’을 구별할 수 있다고도 한다. 사실 그렇기도 하다. 요즘 사람들 가운데 우리말의 장단음을 정확히 가려 쓰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러나 다음과 같은 낱말들은 장단음을 달리 하지 않았을 때 의미가 헷갈린다.
우리 오늘은 매콤한 산낙지 먹으러 가지 않을래?
위 문장에서 ‘산’의 발음을 짧게 하면 산에 사는 낙지가 되는데, 아시다시피 산에 사는 낙지는 없다. 그런 낙지 있으면 소개시켜 다오. 그러므로 위 ‘산’은 조금 길게 발음해야 꿈틀꿈틀 살아있는 낙지를 뜻하게 된다. 살아있으나 죽은 거나 다름없는 사람을 일컫는 ‘산송장’이란 낱말도 ‘산’을 길게 발음해야 한다.
두 가지 뜻을 갖고 있지만 글자가 똑같은 ‘사과’라는 낱말이 있는데 이것 역시 장음과 단음으로써 뜻을 가릴 수 있다.
먹는 사과는 [사과]
잘못하여 용서를 빌 때 쓰는 사과는 [사ː과]
살펴본 것처럼 장음과 단음의 차이가 똑같이 생긴 글자의 의미차이를 만든다는 것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하여 장단음을 구별해서 발음해야할 필요와 그 당위성을 느낀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장단음의 경우, 일관된 규칙이 적용되지 않음으로 해서 궁금할 때마다 사전을 찾아봐야 하고 낱말 하나하나를 기억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이걸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장음일까 단음일까 궁금하다.
② 사전을 찾아본다.
③ 장음인지 단음인지 기억한다.
④ 써 먹는다.
어쩌면 이건 사전을 통째로 외워야 한다는 잔인한 선고와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렇다고 생각한다. 사전을 어떻게 외우냐? 말도 안 된다. 그런 인간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라. 시인 고은 선생님이 옥살이 할 때 사전을 몽땅 외웠다는 얘기가 있는데, 선생님도 장단음의 구별까지 외웠다는 얘기는 아닐 테고 다만 낱말의 의미차이를 헤아리셨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렇다고 외면하거나 포기할 일은 아니다. 완벽하게 할 수는 없지만 노력하기에 따라서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어릴 때부터 좋은 언어습관을 갖는 것이다. 그러자면 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 그리고 나에 이르는 언어생활의 유전자가 좋아야 한다. 굳이 사전을 찾아보지 않더라도 ‘눈보라’의 ‘눈’은 길고, ‘눈물’의 ‘눈’은 짧다는 것을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정확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