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이 희망

김정수 교수의 「“겂이 나 [겁씨 나]”는 틀린 말이 아니다!」를 읽고

봄뫼 2009. 6. 6. 00:02

  교수님의 글 잘 보았습니다. 이번 글을 보고 수년 전 학회에서 우연히 뵈었을 때 ‘자장면’은 틀린 거라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때는 긴 말씀을 들을 시간이 없어서 “왜 저런 말씀을 하실까?” 하고 혼자 고개를 갸우뚱 했었습니다만 이제 그 말뜻을 알 것 같습니다.

 

  사실 전 ‘자장면’이 싫습니다. 짭짜름하면서도 달콤한 자장면을 싫어한다는 뜻이 아니고 자장면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논쟁을 하는 것이 싫습니다. ?자장면이 맞아요, 잠봉은?이란 책을 쓰고 혼이 좀 났었지요.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것만이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그 후로 자장면 얘기는 되도록 피하게 되었습니다만 교수님의 글을 읽다가 한두 가지 여쭙고 싶은 것이 생겼습니다.

 

  교수님은 “본래 효과라 하던 말이 [효꽈]로 변해가는 것은 힘줌꼴이 우세해 져 가는 우리말의 오래고 자연스러운 변화를 반영할 따름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효과]가 올바른 발음이라는 주장과는 다른 의견이십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효과]라고 부드럽게 발음하면 될 텐데 왠지 모르게 힘이 들어가 [효꽈]가 되고 맙니다. 확실히 [효꽈]라고 발음하는 게 편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억지로 [효과]를 강요하지 말라는 말씀이시겠죠.

 

  교수님 말씀처럼 ‘유가증권’도 대개 [유까증꿘]이라고 발음합니다. 그런데 이 ‘유가증권’은 ‘효과’와 달리 된소리인 [유까증꿘]이 올바른 발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왜 ‘유가증권’을 예로 드시며 “유가증권의 발음도 [유까증꿘]에서 [유가증권]으로 교정하고 싶냐?”고 물으셨는지 의아합니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고가도로’라면 좀 생각해 볼 여지가 있겠지요. ‘고가도로’는 [고가도로(높이 만든 도로)]이지 [고까도로(비싼 도로)]가 아니라고 합니다. 따라서 철거된 청계천 고가도로는 당연히 [고가도로]입니다만 열에 아홉이 [고까도로]라고 발음하는 듯합니다. 열에 아홉이니 이게 자연스러운 것이고 ‘대세’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김밥]을 [김빱]으로, [불법]을 [불뻡]이라고 발음하는 것도 비슷한 예가 될 수 있겠지요. 다들 [김빱]이라고 하는 통에 오히려 [김밥]이라고 발음하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교수님 말씀대로 이런 것이 모두 힘줌꼴의 우세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 소주를 [쏘주]로, 가짜를 [까짜]로, 고추를 [꼬추]로, 공짜를 [꽁짜]로 발음하는 것도 힘줌꼴의 우세이자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요? 좀 우스운 얘깁니다만 요즘 손전화를 파는 가게를 보면 ‘꽁짜’란 표기가 압도적입니다. ‘공짜’는 종적을 감추었습니다. 힘을 잘못 주었는지 ‘꽁자’라고 적어놓은 곳도 있었습니다.

 

  세상도 변하고 사람 사는 것도 변한다. 세상만사가 모두 무상한 것이다. 말도 변하고 소리도 변한다. 심지어 없던 말이 생겨나기도 하고 있던 말이 없어지기도 한다. 변화가 자연스러운 거다. 그러니 이 모든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된다. 또한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니 따르면 된다. 하지만 정말 그래도 될까요?

 

  아는 분께 들은 얘깁니다만, 어렸을 때는 ‘상치’가 맞는 말이었는데 어느 샌가 ‘상치’는 틀린 말이 되어버리고 ‘상추’가 맞는 말이 되어서 배신감을 느꼈답니다. ‘상치’가 왜 ‘상추’가 되었을까요? 어디까지나 추측입니다만, 본디 이름이 ‘상치’인 것을 사람들이 멋대로 ‘상추’라고 부른 탓은 아닐는지요? ‘상치’를 ‘상치’라고 쭉 불러 줬다면 이름이 달라질 일도 없었을 겁니다. 그 분이 배신감을 느낄 일도 없었을 것이고, 아이들이 받아쓰기 시험 보면서 헷갈려 틀리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요?

 

  언어학에 문외한인지라 얘기가 OO O 널뛰듯이 되고 있습니다만 ‘자장면’은 발음 이전에 표기의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자장면’을 올바른 표기로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 1960년대 신문에 ‘자장면’이란 표기가 나오더군요. 기사를 작성한 기자도 ‘자장면’을 맞는 표기로 여겼던 거지요. 그때는 표준국어대사전이 없었지만 말입니다. 지금 50대 후반인 가수 배OO 님이 자기 어렸을 때는 발음도 [자장면]이었다고 하는 걸 보면 발음도 처음부터 [짜장면]은 아니었나 봅니다. 중국 사람이 자장면을 발음하는 것을 들어보니 [자]도 [짜]도 아닌 중간쯤 되는 소리였다는 어느 방송의 보고도 있었습니다.

 

  한글은 그 자체가 발음 기호라고 들었습니다. 발음기호이니 글자 그대로 소리 내면 된다. 이것이 한글이 지닌 장점이다. 그런데 ‘가짜’라고 쓰고 [까짜]라고 발음하면 한글의 장점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언문일치를 꾀하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가짜’라고 쓰고 왜 [가짜]라고는 발음하지 못하는 걸까 하는 의문도 듭니다. 영어를 배울 때는 [더블]이라고 부드럽게 발음하면서 왜 택시를 잡을 때는 [따블]이 되는지도 궁금합니다. 된소리 내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을 이해 못하는 것이 아니지만, “예삿소리, 부드러운 소리는 왜 내지 못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부디 저의 무지와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 이 글은 한글새소식 441호(2009. 5.)에 실렸습니다(440호에 실린 김정수 교수님의 글을 읽고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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