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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소환 작전> 원조 개그맨 출신 MC 정재환 "역사, 한글 접목한 방송 하고파"

봄뫼 2016. 10. 15. 10:19

[한겨레] 원조 개그맨 출신 MC 정재환 “역사, 한글 접목한 방송 하고파”

말장난 같은 예능이 난무하는 요즘, 그의 차분하고 깔끔한 진행이 그리워진다. ‘잘생기고 진행 잘하는’ 개그맨으로 1990년대 인기를 끌었던 정재환이 10일 서울 홍대입구역 ‘미디어카페 후’에서 활짝 웃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노래는 추억을 부른다는데, 사람도 그렇다. 시대를 풍미했던 연예인들은 더구나 그렇다. 돌아온 젝스키스, <복면가왕> 속 오랜만에 얼굴을 비치는 가수들의 모습 속에 소년·소녀 시절의 ‘내’가 있다. 그래서 시작했다. ‘추억 연예인 소환 작전’이다.

양손을 좌우로 흔들며 어색하게 리듬을 타던 남자를 기억하는가. 개그맨 정재환(55)이다. 1983년 <영 일레븐>으로 데뷔해 1991년 <청춘행진곡> 진행자로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 춤을 추며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심쿵’하게 했다. 그가 어느 순간 한글 사랑에 빠졌다는 이야기는 꽤 알려져 있다. 2000년 세는나이로 마흔에 대학에 들어가 박사 학위까지 땄다. 현재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고, 성균관대학교와 경기대학교에서 강의도 한다. <한국어 쉬워요>(교육방송) 등 우리말 관련 프로그램을 드문드문 진행했지만, 예능에서는 어느 순간 사라졌다. 개그맨 출신 진행자 시대를 열었던 그는 왜 홈그라운드인 예능을 떠난 걸까.


<퍼즐특급열차> 영상 갈무리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10일 서울 홍대입구역 ‘미디어카페 후’에서 만난 정재환은 다짜고짜 질문에 입이 귀에 걸릴 듯 큰 소리로 웃었다. 세월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지만, 반듯한 느낌, 서글서글한 미소는 ‘잘생긴 개그맨’으로 불리던 90년대 그대로였다. “자기반성이라고 할까요? 진행을 더 잘하기 위해서였어요.” 요약하면 이렇다. “라디오 프로그램을 하면서 끝인사로 ‘단도리 잘해주세요’라고 말실수를 했어요. ‘나는 아직 멀었구나’ 생각에 진행자의 기본인 한국어를 더 정확하게 공부하자, 그런 뒤늦은 깨달음이 있었어요.” “공부할수록 우리말의 중요성을 느끼게 됐고, 더 파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고 한다.

90년대 원조 ‘개그맨 출신 MC’

라디오서 “단도리” 단어 썼다가

우리말 제대로 배우자 만학도의 길

“이왕 시작한 공부 끝을 보자”

요즘은 우리 역사에 푹 빠져

다시 예능한다면?

“역사·한글 접목한 프로그램으로!”

학업과 방송을 병행해도 됐을 터, 왜 펜을 들면서 마이크까지 내려놓은 걸까. 그는 당시 <퍼즐 특급열차> 등 인기 프로그램을 도맡았고, 1995년 <연애의 기초>와 1999년 <맛을 보여드립니다> 등 드라마에서도 주연을 맡았다. “순간의 선택에 충실하다 보니 여기까지 흘러왔다”고 했다. “2000년 초반 처음으로 야외 예능이 생겼어요. 물리적으로 병행하기가 힘들었어요. 당시 스튜디오 예능은 녹화시간이 2시간으로 짧았어요. <퍼즐 특급열차>도 한 시간 만에 끝났죠. 그런데 야외 예능이 시작되면서 수업에 빠져야 했고, 결국 ‘깔끔하게 한쪽을 포기하자’는 생각에 예능을 놓았어요.” 수업에 빠질 수 없어 미니시리즈 섭외도 거절하다 보니 서서히 찾는 곳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왕 시작한 공부 끝을 보자는 마음이 더 컸어요.”

<시네마 데이트> 한겨레 자료사진


  그가 열었던 개그맨 진행자 시대를 후배들이 누리고 있다. 돌아오고 싶은 생각은 없을까? “지금은 예능보다는 내 나이에 어울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어요. 우리말이나 역사에 대한 나름의 생각도 있으니 그런 쪽으로 방송하면 좋지 않을까요?” 그런 생각으로 2010년께부터 <얼쑤! 한국어 쇼>(교육방송) 등 우리말 프로그램을 가뭄에 콩 나듯 맡아왔다. 지금은 <와이티엔>의 2분30초짜리 <재미있는 낱말풀이>와, <한국방송> 대구총국의 <시사 라이브 7>을 진행하고 있다. 영어 팟캐스트 <한마디로 영어>도 8월 시작했다.

말장난 같은 예능이 난무하는 요즘에는 분명한 발음과 중저음의 목소리 등이 장점인 그의 차분한 진행이 보고 싶다는 목소리도 제법 있다. 환경과 예능을 접목하는 등 웃음에서도 의미를 찾는 시도가 늘면서는 공부하는 진행자인 그의 ‘자리’가 기대되기도 한다. “시대 따라 바라는 예능인의 모습이 다르다. 요즘은 끼가 많은 이들을 좋아하는 시대”라고 말해왔던 그도 “역사나 한글을 접목한 예능은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드라마 <연애의 기초> 한겨레 자료 사진.


한글과 함께 우리 역사에도 빠져 있다. 덕혜옹주, 위안부 등의 문제를 담은 일본 규슈 역사책을 쓰고 있다. 한글을 공부하면서 일본어를 7년 동안 배우고, 필리핀으로 영어 연수를 1년 넘게 다녀온 것도 우리 역사를 더 잘 알기 위해서라고 한다. 흐트러짐 없던 그의 목소리가 살짝 흔들린 것도 역사 이야기를 할 때다. “우리 사회에서 청산돼야 할 것이 친일이다. 해방됐을 때 친일파에 대한 심판이 한번 있었어야 했다. 청산돼야 할 것이 안 됐기 때문에,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득세하고 있기 때문에 정의가 바로 설 수 없다.” “국정교과서는 만들어선 안 된다. 역사를 권력자가, 정권이 선택해서는 안 된다”, “위안부 협상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본이 사죄를 하게 하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는 등 한참 동안 제 생각을 소신 있게 얘기했다.

안 그래도 바른 이미지였던 사람이, 더 올곧아 보인다. 한글과 역사를 공부하면서는 술도 담배도 끊었고, 일이 없는 날도 강의 준비를 하느라 책을 보는 등 그의 시간은 한글과 역사로 구성돼 있다. 혹시 딴마음을 품은 건 아닐까? “정치요? 전 그렇게 치밀한 인간이 아니에요. 정치해서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죠. 그러나 전 결이 너무 다르다고 생각하면 아예 안 만나는 성격이라, 정치는 저와 안 맞아요. 하하.”

“나는 모르지만, 인생의 지도는 그려져 있는 것 같다”는 그는 마흔 이후 인생을 한글과 역사 공부에 바쳤다. 돌고 돌아 다시 목표 지점인 티브이 진행자로 돌아온 그가, 다시 멋진 활약을 보여주기를.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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