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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학회 후원으로 고문당한 정세권...'큰 사전' 편찬을 끝까지 후원하다

봄뫼 2019. 6. 27. 10:15

[정재환의 역사 팩트체크] 말모이를 후원한 사람들 ②   


정세권은 1888년 4월 10일 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에서 농업과 어업으로 생계를 잇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서당에서 전통 교육을 받았고, 진주백일장에서 장원을 했으며 진주사범학교에서 신식 교육을 받았는데, 3년 과정을 1년 만에 마치고, 18살에 참봉에 제수되었으며, 23살에 하이면장이 되어 주위의 놀라움과 부러움을 샀다.

1910년 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였으나, 면장으로서 주민들의 소득을 향상하고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방풍림 조성사업을 벌이고, ‘대동계’라는 저축계를 발족했으며, 누에를 치는 잠업조합연습소를 설립하여 목화를 대량 생산하여 우수 면장으로 선정되었다. 가장 역점을 두었던 것은 초가집을 기와집으로 바꾸는 주택개량사업이었으나, 일제의 녹을 먹는 것에 회의를 느껴 1912년 사직했고, 1920년 경성으로 이주해 근대식 부동산개발회사 ‘건양사’를 설립하여 대규모 한옥단지 개발에 착수했다.


건양사 한옥단지, 숫자는 주택 수 추정치(사진 출처: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1920년대 경성은 산업도시화가 시작되어 도성 밖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빈민들이 모여 사는 토굴들이 늘어났고, 성 안쪽에서는 증가하는 일인들이 주거지 확장에 나서 종로 이남 남촌을 점거하는 상황에서 정세권이 한옥단지를 건설할 수 있는 곳은 종로 이북 북촌 일대였다. 정세권은 일제하에서 가세가 기운 왕족의 종친 이혜승 소유의 누동궁(익선동 166번지)과 고종의 서자 완화궁의 사저(익선동 33번지) 등을 매입해 한옥단지를 건설했다.

99칸짜리 덩치 큰 한옥은 시대에 맞지 않았다. 정세권은 크기는 작지만 기능이 개량되어 편히 살 수 있는 집, 한옥의 멋을 유지하면서도 크기를 줄이고 똑같은 구조를 지닌 집, 일반인들이 적정한 가격으로 매입하여 살 수 있는 한옥을 대량으로 건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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