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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법무부장관 이인 선생, 한글학회에 전 재산 기증하다

봄뫼 2019. 10. 26. 06:07

[말모이를 후원한 사람들] 애산 이인 선생 ②   


1930년대 초반 항일 의식이 강한 학생들은 독서회 모임을 통해 민족운동의 방략을 구상하거나 사회주의 이론을 학습하면서 일제 타도를 모색했습니다. 당시 일제에 큰 충격을 주었던 경성제대반제동맹사건 역시 독서회를 모체로 출발한 것이었습니다만 독서회 운동의 중심은 전국 각지의 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었습니다.

독서회를 반제사회주의 활동으로 규정한 일제는 화순ㆍ공주ㆍ서울ㆍ대구ㆍ함흥 등지에서 학생들을 검거해 재판에 넘겼습니다. 이인 변호사는 함흥 만세교 아래에서 졸업 기념으로 모였다가 검거된 학생들을 위한 변론에 나섰습니다. 이인은 사회주의운동에는 회의적이었지만, 일제의 탄압에 시달리는 청년 학생들을 도와야 한다는 데에는 다른 생각이 없었습니다.


자유를 억압하고 착취만을 일삼는 식민정책에 대해서 학생들이 반발하는 것은 자연발생적인 현상이다. 그러므로 학생들만을 나무랄 것이 아니라 위정자와 사회가 책임을 분담해야 할 것이다. 더우기 이 사건은 극심한 고문으로 날조한 것이 아닌가.


1896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인은 조부에게서 한문을 수학했고, 대구의 달동의숙과 경북실업보습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정칙중학교와 메이지대학 법학부에서 공부했고, 1922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처음 맡았던 사건은 의열단사건이었고, 독립투사 오동진사건, 독립투사 이응서사건, 창원소작쟁의사건, 6.10만세운동사건, 간도사건 등등 독립운동을 하다가 피체된 투사들과 농민과 노동자들, 학생들을 무수히 변호하면서 일제의 요시찰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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