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

우당기념관

봄뫼 2018. 9. 7. 11:22

추계예대 수업 마치고 비는 시간에 우당기념관을 방문했다.

생전에 선생의 하신 일과 뜻을 담기에는 좀 작은 공간이다.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10길 17


문 안 양쪽에 선생이 하신 일을 보도한 신문 기사를 모은 자료와 함께 정면에 선생의 흉상이 있다.



우당 육형제가 만주 망명을 결의하던 모습이 담긴 그림이다.

우당의 제안에 단 한 사람도 반대하는 이 없이 전 재산을 팔아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했다.

당시 40만 원의 거금.

1969년 화폐 가치로 600억 원 정도라고 하니, 지금으로 치면 1,000억 이상 아닐까?

산수가 약해 정확히 계산할 수 없다.




중국 유하현 추가가에 정착해 신흥강습소를 연 선생의 뜻이 잘 드러나 있는 글씨다.



암살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담은 영화가 나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우당 청소년 역사교실



우당 외에도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비록 작은 공간이지만 선생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독립운동의 역사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곳이다.


아래는 지난 8월 추가가 답사 때 직은 사진이다.




도로 왼쪽은 중국인 추씨 집성촌이고

다음은 마을 앞 옥수수밭이다.


지금 신흥강습소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지만,

여기 어딘가에서 조선인들의 마을을 일구고 조선의 독립을 꿈꾸었다.





추가가

 

집안에서 압록강을 뒤로 하고 세 시간을 달려 추가가에 도착했다

빨간 지붕을 얹은 중국집들이 울타리를 친 작은 마을

두루마리구름 아래를 달리던 옥수수 밭은 나지막한 산자락을 이고 멈춰 서있다

 

어디였을까

어디에 초가를 잇고 망국의 서러움을 달랬을까

어떤 흔적도 남아있지 않지만,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지만,

백 년 전 이곳을 찾은 망국민 이회영 일가의 꿈이 자란 곳,

조선의 청년들을 키운 곳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가슴으로 느끼는

조선 독립의 희망이 하루 종일 저 산과 벌판을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