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환의 우리말 비타민

‘든지’와 ‘던지’, 뭐든지 좋아!

봄뫼 2020. 4. 29. 13:39

설렁탕을 먹을까, 카레를 먹을까?

난 뭐든지 좋아.

 

   식성이 까다롭지 않은 친구나 동료가 있으면 좋습니다. 비빔밥이든 순두부든 오므라이스든 뭐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산으로든 바다로든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이렇게 뭔가를 선택해야 할 때 ''을 씁니다만, 더러는 '명자던 영자던 다 싫어.'라고 말하는 분수를 모르는 친구도 있는데, 이때는 ''을 써야 할 자리에 ''을 잘못 쓴 겁니다. 그러면 언제 ''을 쓰고 언제 ''을 써야 할까요?

 

'~''~든지'의 줄임말이다. '~()'은 비슷한 의미의 두 가지 용법이 있다. 하나는 "파스타든() 피자든() 배만 부르면 그만이지."처럼 어느 것을 선택해도 차이가 없는 둘 이상의 일을 나열할 때 쓰는 보조사이다... 명사나 대명사 뒤에만 붙는 게 아니라 부사어와 문장 뒤에도 이 말이 붙어 나열의 의미를 표현한다.

-알고 보니 한글은 한국어가 아니래(한글문화연대, 2020.).

  

   명사나 대명사 뒤에만이 아니고 부사어나 문장 뒤에 붙는다고 해서 어려워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혼자서든지 함께든지 가기만 하면 돼.

글을 잘 쓴다든지 말을 잘한다든지 무엇이든 하나는 잘해야 직장 생활에 유리하다.

 

   보시다시피 우리는 앞에 오는 것들이 명사든 대명사든 부사어든 문장이든 든지를 사용해서 이런저런 것들을 복잡하게 나열하는 표현을 예사롭게 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동사나 형용사 뒤에 붙는 경우입니다.

 

여기 있든지 집에 가든지 네 맘대로 해라

좋든지 싫든지 간에 자식 말을 따를 수밖에 없다.

 

   '여기 있든' '집에 가든' 어느 것을 선택해도 상관없을 때 쓰는 말입니다. ‘여기가 좋은 곳이라면 더 있어도 좋겠지만, 술판이나 노름판, 싸움판, 난장판이라면 얼른 집에 가는 게 좋겠습니다. 이제 을 살펴보겠습니다.

 

'''던지'의 줄임말이 아니다. '깨끗하던 샘물'처럼 과거의 어떤 상태를 표현하거나 '먹던 밥을 치우고'처럼 과거의 완료되지 않은 일을 표현할 때 쓴다.

어머니께서 내가 먹던 밥에 고기 국물을 조금 부어 주셨다.

 

   그러므로 ', 든지는 나열에 ', 던지'는 과거 일에 쓴다고 기억하면 됩니다. '뭐가 이렇게 쉽지?' 이렇게 간단한 문제 앞에서 헷갈려하고 고민했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만에 하나 또 다시 그런 불상사가 발생한다면 뭐든지를 떠올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앞으로는 ''''을 혼동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글을 쓰다 보니 정수라 씨가 부른 아아, 대한민국이 생각납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 이 가사에서는 앞에서는 이든을 썼는데 뒤에서는 이건을 썼네요. 그렇습니다. ‘은 호환이 가능합니다.

 

: ‘-거나의 준말.

-거나: ((‘이다의 어간, 용언의 어간 또는 어미 ‘-으시-’, ‘--’, ‘--’, ‘-으옵-’ 따위의 뒤에 붙어))((흔히 ‘-거나 -거나구성으로 쓰여)) 나열된 동작이나 상태, 대상들 중에서 어느 것이든 선택될 수 있음을 나타내는 연결 어미.

예문: 어른 앞에서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울 수는 없다. / 봉선화의 색깔은 붉거나 희다. / 겉모양이야 어떻건 내용이 중요하다. / 남들이 비웃건 말건 신경 쓸 것 없다. / 그는 돈을 벌기 위해서는 물이건 불이건 간에 가리지 않는다.

- 표준국어대사전

 

   따라서 을 쓸 자리에 을 써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자연스럽게 익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양서를 읽는 것입니다. 읽는 과정에서 저절로 알게 되고 익히게 되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노래를 들으면서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고, 흥얼흥얼 따라 부르면서 입에 착 붙일 수 있습니다. 혹시 꿈에란 노래를 기억하시는지요?

 

꿈에 어제 꿈에 보았 이름 모를 너를 나는 못 잊어

본 적도 없고 이름도 모르는 지난 꿈 스쳐간 여인이여

이 밤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디선가 본 듯한 바로 그 모습

떠오르는 모습 잊었었 사랑 어느 해 만났 연인이여

어느 가을 만났 사람이여

 

2020429.